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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Dec 26. 2023

5화. 이름 모를 무만두

영화 《3일의 휴가》를 봤다. ‘울음1’이라고 어딘가 표기할 수 있을 만큼, 관객 중 단연코 돋보인 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줄거리를 알고 갔는데도 슬프고 먹먹했다. 무만두가 등장할 때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시렸다. 그것은 늘 내가 두려워하던 것. ‘되찾을 수 없는’ 그의 음식. 영화에서 진주는 복자의 고향 친구에게서 힌트를 얻어 무만두를 되찾았지만, 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시절 다들 그랬던 것처럼, 결혼과 함께 끝이었던 그의 고향. 마지막으로 갔던 건, 할아버지의 삼년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흔적이 제일 많이 묻은 것은 어디가 아니라 누구로, 나와 걔와 쟤다. 이 셋을 굶기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힘껏 배부르게 먹이려고 그는 많은 요리를 했다. 어릴 적, 자연스럽고도 당연했던 식사가 무수한 이름 모를 무만두가 된 셈이다. 정말로 그 음식들의 이름조차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아침밥’ 또는 ‘점심밥’ 또는 ‘저녁밥’이었으므로. 몇 번은 이거 맛있는데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 답들은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고 그저 늘 따뜻했고 맛있었던 온기와 행복감만 남아있다.


더 늦기 전에 요리법을 알아두려고 이제는 숟가락뿐 아니라 국자도 들지만, 그의 요리 범위에 비하면 우주의 먼지 정도다. 존재는 하지만 미약하다. 그러므로 마음이 매우 급하다. 그의 모든 요리를 흡수할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의 어떤 음식들은 꼭 알아두어야겠는데 녹록지 않다. 나를 놀려먹는 맛도 있겠지만, 알아서 잘 해먹으라는 게 그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가 요리하는 때를 노려 배워보려고 해도 찰나에 끝나는 그의 속도에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그의 곁을 호시탐탐 노리며 그의 음식들이 내 요리책에 안착할 날을 꿈꾼다. 그랬기 때문에 작년에 그가 크게 다쳤을 때, 부족하게나마 대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처럼 그 역시 메뉴판이 생겼으니까. 요리법을 물으면, 간장 이만큼(말 그대로 계량 같은 것도 없이 ‘이만큼’이라고 말하며 넣는다. 동작이 빨라 이만큼이 얼마인지 파악할 틈도 없다) 소금 이만큼 넣으면 끝이야(도대체 알려주는 게 없는데, 뭐가 끝이라는 건지) 하는 그는 조금 밉지만, 그건 네가 해주는 게 더 맛있는데! 주말에 이거 해줄 수 있어? 하고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그를 보면, 곁에 있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곤 한다.  


이름 모를 무만두 목록. 음식 이름? 모름. 들어가는 재료? 모름. 음식을 먹던 계절? 모름. 나 아니면 쟤 아니면 걔 또는 모두의 건강과 입맛에 맞춰 만들어졌던, 이제는 아플 때나 가끔 흐릿하게 나타나 그립게 하는 이름 모를 무만두들. 열 종류도 넘는 청들과 고들빼기, 열무, 파, 총각, 겉절이, 섞박지, 깍두기 등의 계절 김치와 양파, 마늘종, 두릅, 오이지, 초석잠 등의 장아찌까지 곁에 있는 음식이 엄청 많은데도 이름을 잃은 음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슬퍼지는 까닭은, 그의 사랑을 잃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게 어떤 기억인지 어떤 사랑인지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찾아내 만들어 먹고 싶다가도 그런 기억에서 헤엄치는 자체가 얼마나 끝없는 사랑을 반증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지워지지 않는 잔상처럼 남아있는 맛들을 더는 잃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앞으로의 그의 음식들이라도 열심히 사진이든 글이든 기록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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