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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Dec 12. 2023

3화. 기가 막히는

예술에는 타고 나는 감각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앨범을 보면, 누가 보아도 그가 입히고, 포즈를 가르치고,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을 보며 일찍이 깨달은 사실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나는 그의 패션 센스와 사진 감각을 잇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것은 노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데, 여전히 내 심장은 리뷰 0에만 반응하니 통탄스럽다. 나도 이런 내가 의아한데, 설레는 마음으로 피사체가 된 그는 어땠을까. 타고난 감각하고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나는 사진에는 영 흥미가 붙지 않았다.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싫었다. 왜 굳이 남겨야 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보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세상에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던 것은 아니고,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수용한 까닭이다. 우연찮게 접한 조언들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많이 많이 남겨두라는 내용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 말들이 유난하게 들렸다. 당장 달려가 앨범을 열어보는데 역시나. 역시나, 그의 사진은 우리들 옆에서 같이 찍힌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걔 아니면 쟤, 쟤 아니면 나였다. 그때부터 열렬한 마음으로 그를 남기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조언처럼 그는 자신의 사진을 받을 때마다 너무 예쁘게 웃었다. 자신이 이런 모습이냐며 신기해도 하고, 너무 잘 찍어준 것 아니냐며 수줍어하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 그를 찍어주던 날은 좋아하던 꽃 축제에 작정하고 갔을 때인데, 잔뜩 기대한 그와 나는 내 사진을 보는 순간 기가 막혀버렸다. 이게 뭐야. 그의 첫 마디였다. 그러게. 그건 나의 첫 마디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억겁의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그는 어디에서든 어떤 포즈로 어떤 배경과 함께 찍으면 멋진지 바로 찾아냈지만, 나는 어디에서든 대단히 이상하게 찍어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찍어주고 싶어서 열심히 사진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찾아봤고, 이후에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용해 어떤 포즈로 찍어야 멋진가에 대해 늘 생각했다. 인물을 찍을 일이 있을 때면, 더욱 열렬히 찍었다. 이렇게 찍으면 이래서 이상하고, 저렇게 찍으면 저래서 이상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깨달았다. 정답이란 것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워 오답부터 지워나간 것이었다. 어느 해는 격월에 한 번씩 그와 외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어느 해는 계절마다 그를 기록하기도 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내가 셀카를 찍는데 그가 포즈를 취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 나는 사실을 정정하지 않고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본다. 카메라 안의 그나 카메라 밖의 그나 귀엽고 반짝이는 건 매한가지인데, 카메라 안에 있다고 오해하는 그는 더 귀여운 것 같다. 그의 웃음에 견주어 보건대, 내 사진 실력은 꾸준하게 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찍는다며 기분 좋은 소리를 듣기도 하고, 이벤트 당첨도 되어보고, 사진을 넣은 달력도 만들어 쓴다. 나 또한 사진 찍는 일이 즐겁다. 왜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남기는지 알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사진은 참으로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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