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각. 헐거워진 반지

by 개복사

/

8 조각



반지는 손 씻을 때 번거롭다.

가끔 비누나 비누 거품이 끼면,

휴지로 닦아내도 미끈함은 남아서

미끄러운 채로 일을 한다.

근무지에서 변함없이 미끄러지는 마음처럼.

아, 일하기 싫다.

열심히 돈 벌기 싫다.

손가락에서 헐겁게 돌아다니는 반지를 가지고 놀다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내 반지는 작은 애들과 큰 애들로 나뉜다.

전자는 땀이 나지 않을 때,

후자는 땀이 날 때 낀다.

오늘 끼고 나온 반지는 큰 크기다.

다한증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전신에 땀이 많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중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분이다.

타인에게는 그렇고, 내게는 느껴지는 부분이다.

0.1mm만 더 부으면 터질 것 같이

땡땡 불어서 불편하다 못해 아프다.

날이 계속 덥고 일하다가도 열은 나니까

큰 반지를 끼고 왔는데, 땀이 나지 않았다.

주말 동안 열심히 운동하긴 했지.

오늘은 비교적 날이 서늘하기도 했다.

반지는 손가락에 끼는 물건.

헐거워진 반지가 눈앞에 자꾸 걸렸다.

꼭 맞지 않고 헛도는 반지가 마음과 닮은 것 같아서

헐거워지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시발점의 열정과 의지와 웃음은 어디로 사라지나.

처음의 그것이 크면 클수록

작았다가 커지면 커지는 만큼

마음에 빈 공백이 늘고 머지않아 헐거워지고 만다.

그럴 때는 그 공백이 왜 그리도 시린지.

전래동화 콩쥐팥쥐에 나오는 밑 빠진 독이 되어

영혼조차 빈 껍데기가 되거나

밑 빠진 독을 열심히 막는 두꺼비가 되고 마는

갑자기 서글퍼지는 인간의 삶.

열심히 사는 건, 멋지고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만큼 안 열심히 사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운동에서도 같은 시간 동안 내내 달리는 것보다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인터벌이 더 효율이 좋다.

그러니 내가 하늘로 솟구쳤든 저 너머로 내달렸든

열심히 했다면, 다음으로는 꼭 쉬어 가야지.

빈 공백에 허탈해하지 않고

새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헐거워지다 못해 영영 뭘 잃는지도 모른 채 잃기 전에,

발장구치면서 놀아야겠다.


by 개복사

이전 08화7 조각. 기록 쌓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