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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인가? 술례자인가?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2)

by Kevin Kim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10일 차)

나헤라에서 성인의 고향 산토 도밍고까지



아침 6시. 아직 밖은 어둡고 날씨는 쌀쌀하다. 어두운 길에 해드 랜턴을 찾아 쓰고 출발하는데 손은 시리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나헤라에서 머물던 몇 명의 한국 순례자들을 만나 함께 출발했다. 조금 걸으니 나헤라 도시를 벗어나 바로 시골들녘이다. 아직 남아있는 푸른 달빛 아래 포도밭이 풍성하게 자리하고 있다.

푸른 달빛 아래 리오하 포도밭이 풍요롭다


오늘도 종일토록 리오하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다. 보리밭과 포도밭이 교차하고, 그 사이사이로 피어난 유채꽃과 바람난 양귀비까지··· 스페인 까미노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즐기기로 했다. 육체의 피곤과 발목 통증은 에라~ 모르겠다.


여기 스페인에는 참으로 돌이 많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다. 길에도 밭에도 산에도 온통 자갈이다. 이런 자갈들은 농부에도 무익하거니와 우리 순례자들의 발목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 자갈밭 길을 조금만 걸어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재치 있는 순례자들은 이 자갈을 이용하여 길 복판에 화살 표식을 해 두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기쁨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는 지금 걷느라고 모든 힘을 쏟는데, 누군가는 뒤에 오는 순례자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내고 힘을 들여 표식을 해 주고 간 사람이 있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화살표만 보면서 걷는다


우연히 같이 걷기로 한 사람 중 박 선생이란 중년 여성과 한참을 같이 걸었다. 이번 까미노가 4번째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고 너무 힘들다고 한다.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매년 도망치듯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로 달려온다고 한다. 사연을 다 들었음에도 마땅히 해 줄 말이 없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는 것 말고 딱히 방도가 없었다.

박 선생 뒤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따라 걸었다. 어깨를 보니 우는 모습이다. 눈물을 훔치며 걷는 뒷모습을 멀리에서 바라보며 나도 울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이고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모르는 이를 위해 함께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특권이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박 선생은 이날 이후 가끔은 같이 걸으면서, 때로는 메신저로 대화하며 산티아고에서 순례길을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 소통했다. 마지막 메시지는 “선생님. 이제 5번째 까미노는 안 와도 될 것 같아요.”였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메시지를 받고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까미노에서 회복되고 힘을 얻은 박 선생을 지금도 축복해 주고 있다. 물론 다시 볼 수는 없겠으나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다.


얼마를 걸어 첫 마을 ‘아소프라’에 도착했다.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왔으니 따뜻한 커피가 소중하게 필요했다. 일찍 문 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발목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순례길에는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거리와 시간 계획이 있는데 예정보다 늦어지면 어려움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함께 걷던 사람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 "먼저 가라"고 했다. 이 사람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왠지 외로움이 느껴졌다.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천천히 걷기로 했다


모두 떠난 자리. 골목을 따라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땅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길가 Camino 이정표 위에 등산화 한 짝이 외롭게 놓여 있다. 통상 신발이 해져서 못 신게 된 경우 신발을 벗어놓고 가면 누군가가 거기에 꽃을 심어 장식해 놓은 게 일반인데 이 신발은 완전 새것이다. 벗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신발에 물기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신발에서 무언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새 신발을 사서 이곳에 왔는데 발이 다 까져서 그냥 신발을 벗어 버렸노라”라고··· 나머지 신발 한 짝은 몇 km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에스테야 숙소에서 새 신발이 맞지 않아 물집으로 고생했던 프랑스 청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프랑스 청년은 무사히 완주했을까?


"‘시리누엘라 Ciriñuela’라는 마을에 도착하면 '리오하 알타 골프클럽'이 있는데 여기 클럽하우스에서 아침 식사가 가능해요.” 앞서 간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왔다. 통증을 참아가며 다리를 끌다시피 걸어 도착하니 사람들이 환영해 준다. 박 선생도 내가 걱정되었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다시 출발한다. 시리누엘라 마을을 지나 조그만 언덕을 넘으니 까미노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는 사진촬영 명소가 나왔다. 나는 여기 오기 전 몇 번이고 이곳을 눈여겨봤고 이곳에서 인생 샷을 남겨 보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통증과 싸우며 걸어온 것이다.


사진에서 봤던 것과 같이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유채밭, 밀밭, 보리밭이 어우러져 있고, 추수를 마친 밭은 갈색 흙이 넘실거려 환상적인 앙상블을 주기에 충분했다. 푸른 하늘에 뭉개 구름이 있거나, 저녁 석양에 이곳에 섰다면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도 비바람 몰아치는 언덕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나는 반드시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어가며 일몰과 일출에 어우러질 이 풍경을 다시 볼 것이다. 순례자들이 언덕 위에서 보리밭을 내려다보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나도 다리 아픈 걸 잠시 잊고 사진 찍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정말 예쁘다 그리고 그 장면은 지금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

일부러 물감으로 배색해 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소염제와 근육 이완제 그리고 진통제까지 마음껏 자가 처방하여 먹었는데도 발목 통증은 그대로다. 근육이 마치 돌처럼 뭉쳐 있다. 이럴 때 침 한 방이면 끝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말 잘 걸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뒤처져 걷게 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다리가 아파 속도를 못 내니 또다시 혼자다. 저만치 뒤처져 혼자 언덕을 내려갔고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며 다시 언덕을 올랐다.


순례길 정보망에 침을 놓는 한국 사람이 있다고 올라온다. 오늘 ‘산토 도밍고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 거라고 한다. 내가 오늘 공립 알베르게에 묵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먼저 간 사람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한국 단체 관광객들에게 사전 예약을 받아 현장 배정 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허무하다. 아니 단체 관광객들이 밉다. 다리 근육에 침을 맞으려면 그 숙소에 들어가야 하는데···

멀리 산토 도밍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토 도밍고에 도착하여 대성당 앞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소식대로 알베르게 앞에는 엄청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접수를 받는 스페인 아저씨는 흥이 많은 사람인지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농담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바람에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 사이에 머리를 밀어 넣고 “기다리면 침대가 나올 것 같나?”라고 물어보니 고개만 돌려 쳐다보고 대답하지 않는다.

만일 침대가 이미 다 나갔다면 빨리 다른 숙소를 알아보거나 다음 마을로 넘어가야 하지만 도저히 정보를 알 수 없다. 한국 단체팀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다음 마을로 갔으니 당신도 빨리 포기하고 가라”고 종용한다. 망설여진다. 여기서 기다리다 다음 마을까지 자리가 없게 되는 건 아닌지. 조바심으로 리셉션에 있는 자원 봉사자에게 몇 번이고 상황을 물어봤지만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최악의 경우 “로비 바닥에서라도 자겠다”라고 졸라야지 단단히 마음먹고 기다리기로 했다.


자원 봉사자는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 나누고 웃으며 즐기고 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그렇게 무뚝뚝하던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대답한다. “너 행운아야.” 갑자기 이 아저씨가 사랑스러워 보인다. 2층 침대의 위 칸을 배정받았다. 이거라도 어디냐? 절뚝거리며 방으로 올라가니 한국 자매 한 명이 아래층 침대를 양보해 준다.

산토 도밍고 공립 알베르게 내부


“케빈!” 내 이름을 부르며 팔을 벌리고 뛰어오는 한 젊은 여자가 있다. 대만 아가씨 조세핀이다. 내가 다리가 아파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걱정해 준다. 이 아가씨는 길에서 만났다며 잘 생긴 이탈리아 청년까지 소개해 주고 반갑게 포옹해 준다. 이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산티아고까지 함께 걸었다. 순례길의 재미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저녁이 되자 한국에서 단체로 왔다던 사람들이 얼마 안되는 주방을 점령했다. 잠시 후 숙소 내에 온통 마늘 냄새가 진동한다. 슈퍼에서 닭과 마늘을 사다가 커다란 솥에 넣고 닭백숙을 해 먹는다고 한다. 어느 서양 순례자가 지나가면서 "냄새 좋다"라고 이야기하자 진짜인 줄 알고 신나 한다. 이 아저씨는 나중에 침실에서 냄새가 너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 사람인 나도 그 냄새가 싫은데 서양 사람은 오죽했으랴.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 무얼 해 먹던 자유이다. 그러나 적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경건함의 의미에서나, 전 세계인이 모이는 다중 시설이란 점에서 간편식 위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부 한국 순례자 중에는 삼겹살을 사다 구워 먹는다고 주방에 온통 연기와 기름투성이를 만든다. 삼겹살을 잘라먹기 위해 샀다며 가위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한국인도 봤다.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소주가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길가에서 나물을 뜯어 저녁에 무쳐 먹는 사람도 있다며 스페인 아저씨가 불평하는 소리도 들었다. 길가에 흔하디 흔한 고사리를 뜯어 배낭에 매달고 가면서 말리는 사람도 있다.


한국 단체 팀은 전기밥솥까지 가지고 다니고, 알베르게 입구에 가면 단체 팀이 가져온 대형 트렁크가 가득 쌓여있고 침대는 이미 동이 난 상태이다. 봉고차에 가방을 싣고 먼저 온 가이드가 알베르게 침대를 이미 선점해 버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아주고 이곳 스페인, 서양 문화에 맞춰 주면 더 좋지 않겠나. 일부 한국 사람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다. 과연 순례자인가? 술례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의나 예절은 강요할 성격이 안된다는 것을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사전에 보니 “예절이란 존중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말투나 몸가짐을 나타내는 질서 및 체계”라고 해석하고 있다. 공자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하지 않도록 바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 이야기 한 걸 보면 “이건 내 자유야!” 하고 주장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사람과 함께 숙소 앞 식당에 가서 순례자 메뉴를 주문해 먹었다. 순례자 메뉴는 음료와 3개 코스 음식이 나온다. 전채 요리로 수프, 파스타 또는 샐러드 그다음에 메인으로 닭고기, 소고기 또는 돼지고기가, 마지막으로 커피 또는 아이스크림이다. 음료는 생수나 청량음료 또는 포도주를 주는데 대부분 포도주를 선택한다. 포도주 인심은 너무 후한 편이다. 많이 마시고 푹 자라고 그러는지 통상 병째 가져다준다. 가격도 착하다.


침 아저씨를 찾았다. 자기는 순례길에 오기 위해 배운 침술이기에 무면허라 다른 사람에게는 시술할 수 없다고 한다.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침 좀 놔 달라고 졸랐다. 결국 퉁퉁 부은 내 발목에 1시간 이상 정성스럽게 침을 놔주었다. 다리에 온통 바늘을 꽂고 있는 동양 사람을 본 서양 사람들은 신기해서 쳐다보고, 안쓰러움에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발목 위 근육이 돌처럼 굳어있다. 이때까지는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바보처럼...


시곗바늘은 돌아갔고 시간은 흘러갔다.

아무리 근육통증이 내 발목을 잡는다 해도 나는 벌써 10일째 순례길을 걸어 산토 도밍고까지 왔다.

아파도 가면 된다. 아파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 갈 수 있다.

이제 562Km 만 가면 된다...

알베르게 앞 상점에 있던 거리 표지. SANTIAGO 562km.



https://youtu.be/s4Mv6tR0PI4?si=zkurJh6ibOMU_Z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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