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가 제대로 새해죠
회사를 다닐 때에도 시골에 사는 지금도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왜 1월이 1월일까. 겨울의 한복판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다니. 아무리 새해 계획을 세워봐도 기운이 나질 않는다. 12월 31일 밤을 지나 1월 1일의 해를 바라본들 그때뿐, 좀처럼 새롭게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업무의 스케줄에 맞춰 어쩔 수 없이 휘둘리기라도 했지만 시골에서는 나를 휘감을 것도 없으니 2월까지 꼼짝 않고 겨울잠을 잔다.
그러고 3월이 되고 경칩을 지나면 거짓말처럼 발바닥 끝에서부터 에너지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달라진 햇살의 온도, 잔디밭을 뚫고 나오는 갖가지 잡초들, 2월 말부터 조바심치며 피어나는 네모필라 꽃들, 오후 다섯 시가 넘어도 여전히 밝은 산책길. 솟아오르는 생동감이 도처에 넘쳐흐른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아쉽다. 도대체 왜 3월이 1월일 수 없나 하고. 겨울을 보내며 잔뜩 웅크려진 몸으로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봄이 되어 활짝 펴진 몸으로 방방 뛰며 새 해를 맞이하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세상이 정해놓은 숫자와 자연의 변화 그리고 자연의 에너지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신체의 기운, 이 세 가지가 잘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시너지가 나겠냐 이 말이다.
이게 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문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춘분이 있는 3월을 새해 첫 달로 삼았다. 3월을 뜻하는 ‘March’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서 따온 것으로 3월은 겨우내 쉬었던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달이었다. 10월을 뜻하는 ‘October’의 ‘octo-’는 8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12월의 ‘December’의 ‘dec-‘ 역시 10을 뜻하는 접두사. 즉 3월은 1월, 10월은 8월, 12월은 10월이었다. 얼마나 지혜로운가. 봄의 계절이 새해라는 게.
하지만 우리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님께서 11월 1일을 기준으로 새 달력 시스템을 선포하며 11월을 1월로 만들고야 말았다. 당시 로마가 사용하던 달력이 1년을 355일을 기준으로 삼았던 달력이라 일 년의 길이가 들쑥날쑥하게 되어 새로운 달력으로 교체한 것인데, 아니 2개월을 못 참아? 1월 1일이 되어서 새로 발표하면 되잖아. 사람이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이렇게 우리는 성질 급한 카이사르 때문에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에너지도 잘 생기지 않는 추운 계절에 새해를 맞게 되었다. 침잠의 계절 겨울에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뭔가를 시작할 에너지가 갑자기 샘솟을 리도 없다. 1월을 보내고 2월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새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면, 또는 계획을 세우고도 힘내서 해나갈 에너지가 생기지 않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면, 우리 잘못이 아닌 겁니다.
무조건 카이사르 때문인 걸로 해요 우리. 그리고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해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