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써야 해서 일기를 참는다. 시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을 망쳐서 풀어지면 다시 시로 돌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지 않아야지. 삼사 년에 걸쳐 발표한 시를 묶어서 시집을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첫 시집은 그러지 못했다. 청탁이 없어서 시를 별로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시집을 낼 때 선물을 던진 것 같았다. 짜짠!
문예지에 발표해버리면 시에 대한 첫인상을 내가 가질 수 없다. 시를 쓰자마자 장독대에 넣어둔 뒤 삼 개월 후에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내 시의 첫인상을 가질 수 있다. 그때 시를 시집에 넣을지 말지 결정한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으면, 자연사한 문장들이 있어서 종이를 털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청탁이 올 때마다 시를 발표하면 장독대에 시를 묵힐 시간이 없다. 어제 쓴 시를 발표하게 된다. 어제 쓴 시가 좋은 시일 리가 있나.. 어제 쓴 시는 무조건 안 좋다...(왜 그럴까)
좋은 시라면 더욱 발표하고 싶지 않다. 김 새는 기분이 든다. 발표한 시를 시집에 넣으면 선물 내역을 알려준 뒤에 선물을 주는 기분이 든다. 이건 좀 이상한 비유인가. 시가 선물이라니...그럼 독약은 어떤가. 독약의 성분표를 밝힌 뒤 독약 주기. 이것도 좀 이상한 비유인가. 그래도 시가 독약까지는 아닌데...그럼 선물과 독약 사이를 방황하는 존재가 시인가?
지금은 시에 집중해야 해서 약속 장소에 나가고 싶지 않다. 시를 쓰기로 결정하면 시간이 갑자기 촘촘해진다. 시에 대한 고민들....달콤한 수필 제목 같은 시 제목을 쓰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제목빨 시가 되지 않도록. 그런 제목을 달면 본문도 풀어져서 안일한 수필이 되어버린다. 제목을 먼저 달았더니 제목이 자꾸 시의 첫 문장을 결정해버린다. 허허벌판에서 뛰어듦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을 갖고 싶은데.
방금 쓴 시는 별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않니...?” 인력거에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 게 문제인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 무슨 말을 그냥 하면 되는데, 시를 경유해 무슨 말을 하자 시가 암호가 되어버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면 시가 불순해지기 때문에 시에서 무슨 말을 제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