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출판사 petit fute에서 북한 여행 가이드북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19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북한 여행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petit fute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북한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서 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 책을 팔려고 만든 것도 아닌 듯하다. 매년 북한을 방문하는 프랑스인은 400여 명 안팎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4,000부를 찍었다고 한다) 북한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잘 팔고 싶은 것도 아닌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가이드북을 북한을 방문할 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책을 압수당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그 사람에 관해 적은 일기장을 가져가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며칠 전, 잡지 인터뷰 중 기자가, 내게 일기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일기는 ‘문보영을 웃기는 데 성공한 인간들에 관한 기록’인 것 같았다. 친구들에 관해 많이 쓰는 편인데, 그 이유는 친구들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친구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해서도 아니며, 책을 잘 팔고 싶어서도 아니다. 프랑스 출판사가 북한에 관한 책을 쓴 것처럼.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친구에 관해 쓴 글을 가져간다. 가져가서 기어이 일기를 보여준다. 친구가 나를 웃겨서 일기를 썼는데, 걔만 나를 웃긴 게 억울해서, 친구가 나를 웃긴 것을 일기로 써서 역으로 친구를 웃기는 역공을 펼쳐야 잠이 잘 오기 때문인가?
인터뷰 전날 독자가 준 편지에도 나의 일기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나의 일기를 ‘문보영 묶음’이라고 요약했다. 내 일기를 읽으면 나의 친구들인 인력거, 흡연구역, 호저 그리고 말씹러를 알게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문보영을 알면 고구마처럼 다른 재미있는 인간들이 우두두 딸려 나온다고. 문보영 묶음이라는 표현에 묘한 감동을 받았다. ‘문보영 묶음’이라고 칭하기엔 친구들은 문보영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지만 말이다. 사람 묶음은 어떨까. 아니다. 친구들은 줄로 잘 안 묶인다. 줄로 묶으면 헐크처럼 가슴과 팔을 부풀어 체인도 끊어버릴 것이다. 제멋대로 세상을 활보해서 만나기도 어렵고 내 연락에 답장도 잘 안 하는 인간들이 내 친구들이다.
문보영 묶음. 다시 중얼거려본다. 소설집. 산문집. 일기집. 아니, 친구집은 어떤가. 안녕하세요. 제 책은 친구집입니다. 친구들을 묶어서 책으로 냈습니다.
인간 소개소는 어떤가.
나는 인간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저의 직업입니다!
시인... 아닌가요?
그게 그겁니다!
앞으로 이렇게 말해야겠다. 시인이라는 칭호보다 멋진 데다가 번듯한 직업도 있어 보인다.
며칠 전 내 친구 흡연구역은 소개팅남에게 내 산문집을 한 권 선물했다. 다음 만남 때, 흡연구역이 ‘여기 나도 나와요’하고 말했다. 책을 읽은 소개팅남은 반사적으로 ‘흡연구역이군요’ 하고 말했고, 정체가 탄로 난 흡연구역은 ‘다시 생각해 보세요’하고 조언했으며, 소개팅남은 주사위를 던져 점쳐보기로 결정했다. 1번이 나오면 인력거, 2번은 호저 3번은 물메기 4번은 차카게 살자 5번은 별똥별. 주사위를 던졌는데 6번이 나왔기 때문에 흡연구역은 아무도 아닐 수 있었다. 흡연구역이 이 일화로 나를 웃게 했으니, 지금 쓴 일기로 흡연구역을 웃기러 가야겠다.
나는 그냥 쓰고 싶었다. 아주 멀리 있는 것에 관해. 가기 어려운 곳에 대해. 갔더라도 다시 가기 어려운 곳에 관해. 가면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궁금한 곳에 관해. 가서 얼쩡거리고 싶은 곳에 대해. 그것에 관해 썼다는 이유로 영혼이 함께 얽혀 버리는 존재들에 관해. 그것이 나의 친구들이니까. 프랑스 출판사가 북한에 관한 책을 쓴 것처럼. 쓸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쓴 책을 쓰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