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동물
나는 피자를 좋아하고 불면증을 앓고 있다. 간헐적으로 시를 쓴다. 취미는 딴생각이다. 시를 쓴 계기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권태와 밀접하다. 집에 있으면 죽을 것 같다. 도서관에 가면 죽을 것 같진 않은데 숨만 막힌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나아서 도서관에 간다. 낮에 누군가를 만나는 삶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낮에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 밥을 먹고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혼자 있어야 하고 혼자 있다 보니 책을 읽게 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지루해서 일기를 쓰고 메모를 끄적이다가 시를 쓰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종일을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도서관도, 책도 살아 있는 것 같다. 시집을 내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먼저 선물했다. 그 친구가 아무 쪽이나 펼쳐 읽었는데,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시구가 ‘보지 마!’였다. 그건 결국 책이 하고 싶은 말일 테다. 함부로 읽지 말라고, 말이다.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은 잘 책을 안 읽는다. 공부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서가의 책들은 보통, 문제집이나 시험서 등받이용으로 쓰이거나, 의자가 너무 낮아서 키를 맞추기 위해 엉덩이에 깔고 앉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내가 읽고 있는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너구리랑 눈싸움을 하고 있다. 책은 꼭 읽으라고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게 좋다.
어렸을 때, 엄마가 책을 읽어주었다. (간헐적으로). 사실 엄마도 나도 독서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똑같은 책만 읽어줬다. 그 책은 베이지색 표지로 된 <바보>라는 책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잘 검색이 안 된다. 무의식중에 내가 안 찾고 싶어 하는 거거나, 책이 찾아지기를 원치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엄마는 그림책도, 어린이 책도 아니라 어른들이 읽는 <<바보>>라는 책만 읽어줬다. 그 책을 읽는 엄마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고 엄마 입 냄새도 좋았다. (언젠가 그녀의 입 냄새가 그리워 울 날이 오겠지) 엄마가 <바보>를 읽어주면 너도 나도 다 바보가 되어가고, 바보가 되고 싶고, 나아가 바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많이 읽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이 시를 쓸 때도 자주 떠오른다.
지금은 태국 여행 중이다. 하루 종일 글만 쓴다. 내가 이렇게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지경이다. 시 쓰는 것만 안 좋아할 뿐 글 쓰는 건 무척 좋아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글 쓰느라 바빠서 시는 안 쓰고 있다)
시를 쓰는 이유는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 질문을 받을까 싶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오하이오의 Cleveland로 가족을 만나러 비행기를 탄 신디는 (Cindy Torok)은 비행기 탑승 며칠 전, 항공사에 그녀의 반려 동물인 다람쥐 데이지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탑승 당일 다람쥐 데이지는 탑승이 거부되었다. 불안증을 앓고 있으므로 그녀의 애완동물 다람쥐와 동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지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지가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다람쥐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프런티어 항공사는 <쥐류는 기내 반입 불가>라는 결정을 내렸다. 통보를 받은 신디는 하차를 거부하였다. 프런티어 항공사는 경찰을 불렀으며, 나머지 승객들은 두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경찰이 그녀와 다람쥐 데이지를 휠체어에 태워 끌어내릴 때, 신디와 다람쥐 데이지는 승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견뎌야 했다. 그녀는 결국 다람쥐 데이지 없이 홀로 다음 비행기에 올랐으며 누군가 그녀에게 <다람쥐 없이 비행기를 탄 기분은 어땠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It was emotional>이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