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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Apr 27. 2020

빛과 어둠의 공간

앞 날이 두려운 당신에게, 앤트러사이트 연희점

어둠의 통로, 지금 할 수 있는 한 걸음부터


색깔은 색깔을 만날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집니다.
세상에 완전한 검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모든 빛을 흡수한 검정의 고요를 가늠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에 이 검정을 넣었습니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넓은 창으로 쏟아지는 빛을 마주하면, 잠시 시간은 아득해집니다.


커피의 로스팅, 커피 브루잉 클래스 등 커피의 본질에 집중한 카페 앤트러사이트 연희점.

외관부터 내부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한 이 카페 공간의 시작은 새까맣고 좁은 통로로부터 시작된다.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좁고 어두운 통로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에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 이후 다시 어두움을 마주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새까만 통로 안으로 발길을 옮길 수 있었다.

예전과 같이 출찾기 위해 시선을 불안하게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 저 어두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이 어두움은 아주 은 순간에 불과하며 그저 이 길이 끝날 때까지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만이 빛을 맞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은색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좁고 어두운 통로를 절반 정도 지나 어두움이 익숙짐을 느끼기도 잠시, 저 길 끝에 보이는 작은 빛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나니 환하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렇게 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짧은 순간이지만 어두움을 두려워했던 나 지신이 부끄러워다.


생존이 목표면 표류지만 보물섬을 찾아가면 모험이다. @ 연희동



거리 두기


깜깜했던 통로가 끝이 나고 2층 공간에 들어서자 기다랗게 한 줄로 쭉 연결된 큰 테이블과 서로 평행하게 놓인 평상 모양의 가구가 테이블 겸 좌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보이는 정중앙 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둘러보고 있으니 공간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는데 공통점이 보인다.
큰 테이블이 놓여있어 많은 자리가 비어 있음에불구하고 이제 막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빈자리 아무 곳이나 앉지 않고 두리번거리다가 하나씩 자리를 찾아서 앉는 것이다.

마치 바둑 기사가 바둑면서 다음 수를 읽듯이 지금 채워져 있는 좌석의 위치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다음의 위치가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어디가 가장 적합한지를 따져보며 무의식적으로 이미 앉아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앉게 될 자리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시험의 답안지

따로 테이블의 구분이 없이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인 테이블은 공간을 찾은 사람들에게 있어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시험의 답안지와도 같다.

하지만, 것이 오히려 선택을 하는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수많은 좌석들이 놓여있는 영화관이나 극장을 떠올려보자.

모든 좌석들이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데서 이 공간의 목적 중요를 알 수 있듯이 이 특수한 공간에서의 선택 기준은 명확하다.

어떤 좌석이 가장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가, 그리고 + 제일 뒤가 좋다, 가운데가 좋다, 일행이 몇 명이다 하는 식의 개인의 취향만이 좌석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은 좌석 고르는 데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의도적으로 넓힌 선택지와도 같다.

개인의 목적과 조건을 제외하고는 단지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싸움과도 같이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의 위치가 나의 자리를 선택하는데 무의식적으로 고려해야 할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공공장소의 남자 화장실에서도 빈번하게 겪을 수 있다.
일렬로 늘어선 공중화장실 남자 소변기에 양쪽 끝을 먼저 채우고 가운데를 사용하는 것처럼,

가운데 소변기를 먼저 차지하면 체크메이트가 되는 것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지금,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에 있어서 가장 개인적인 영역의 범위는 1~1.5m 정도이며,

이 범위 내의 영역을 타인이 침범할 경우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가족이나 연인 관계와 같이 타인이 아닌 친밀감, 유대감이 형성된 관계에서는 이 물리적인 거리의 제한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개인만의 심리적인 영역이 있다.

밀도 높은 서울의 생활에서 우리는 그동안 개인과 개인의 거리를 지키는 것 초자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공간의 목적


2층의 가운데 통창 앞은 다른 위치와는 다르게 살짝 돌출되어 조금 더 넓은 면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마치 무대와 같은 형상을 띄고 있.

마치 공연장의 무대 혹은 영화관의 스크린과도 같아 보이는 이 위치에 의자 하나를 당당하게 차지한 음악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듯이 나머지 좌석이 주욱 놓여있는 안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아마도 행사나 공연이 있을 때는 음악이 치워지고 또 다른 주인공이 그 자리를 무대 삼아 서있을 것이다.


낮 시간을 채우고 있던 햇빛이 사라지고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다란 테이블 위 작은 스탠드 조명이 올라와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밝힌다.

살펴보면 카페 2층 내부의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은 백열등 형태의 LED 조명 9개가 전부이다.

온통 환하고 밝았던 공간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어두움이 가득 찬 공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시각에 많은 것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에게 빛이 없는 어두움이란 두려움과도 같은 존재이다.

다가올 상황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이 무언가 선택하거나 결정을 해야 할 때,

혹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내일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이 모든 것은 볼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이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

두려움과 불안함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혹은 모르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지금 디딜 수 있는 한 걸음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면 들이닥친 어두움이 두려움이 아니라 집중의 순간이 될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래서 불안하다면 더욱더 지금 한 걸음에 집중해보자.

빛은 어두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어두움 또한 빛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듯이 빛으로 인해 어두움을 볼 수 있고, 어두움으로 인해 빛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불안해하며 멈춰 서지 말자 자신을 믿고 해치고 나가다 보면 왜 이제 왔냐는 듯 환한 빛이 맞이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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