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잘 붙어 있던 털들이 모두 사라지고 드러낸 흉물스러운 맨다리 두 짝이 여름 긴바지 안에서 들러붙고 쓸려 새삼 바지 천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다.
징그럽고 꺼끌꺼끌한 털들이 그대로 있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다.
원래 있던 놈이 사라지고 나니 그놈이 투정 한마디 없이 묵묵히 하고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찐하게 알게 된다.
사람도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더 티가 많이 난다던데 옆에 있을 때는 서로 같이 웃고 떠들고 즐거웠다가도 한낱 털 몇 가닥 같은 가벼움에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지내면서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 것이 가까이서 본 인간관계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막상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없애고 나니 아유 속이 다 시원하다, 진작 없앨걸 그랬네 소리가 나온다는 것과는 다른 경우다.)
누구나 부러워하고 모두가 찾는 대단한 사람이 되기에 앞서 그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묵묵히 잘 해내는 털 같은 놈이 먼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간 대체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 또한 그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온전한 털 한가닥이었길 바라며.
또다시 인연이 될 다음의 그곳과 그 사람들에게서는 더 나아진 내가 되길 바라며.
3년 전 열고 들어왔던 문을 스스로 열고 나가기로 했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짐 캐리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드라마 속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두려움의 상징인 바다를 건너 세트장 끝에 도착한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그동안 함께 했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Night 세 마디의 인사말을 남기고 세트장 밖으로 나간다.
비록 그 사람들이 짜인 각본대로 행동하던 연기자들이었고 그동안 자신을 속여왔다고 걸쭉한 욕이나 복수로 끝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 또한 소중한 자신의 인생 중 한 부분을함께한 사람들이기에 주인공은 그렇게 언제나 그랬듯 똑같은 인사로 인연을 마무리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음이리라.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트루먼은 누리고 있던 안정을 스스로 박차고 또 다른 선택을 했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세트장 속의 내가 아닌 조금 더 자기 자신 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그런 그의 뒷모습에 모두가 박수와 응원을 보내준다.
주인공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비록 짜인 연극에 속았었더라도 솔직하고 충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위해 힘썼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