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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Aug 25. 2020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라

be water, my friends

학교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설계 회사에서 공식적인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시절,

그렇게나 열정하고 애정 했던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만이 가득했던 그때,

그렇다고 마땅히 다른 선택지도 찾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분출해내지 못한 답답한 마음만 내 속에서 곪아가던 시절...

옆팀 팀장님이 개인 메일로 보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라'

이 문구는 팀장님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로 적혀있었는데 그 당시엔 뭔솔? 핸들? 그래서 뭐 돌리고 어쩌라고 하면서 구시렁거리며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하기도 하고,

이제 고작 2-3년 해본 놈이 업계에서 10년을 넘게 일해온 통밥 굵은 분들 앞에서 회사의 미래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하며,

회사의 전통을 생각해서 입고 다니지 말라던 반바지를 매년 여름마다 일부러 더 입고 다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도라이 같은 놈 하나가 회사에 잘못 굴러 들어와서 팀장급 이상, 설계 본부 본부장이 참석하는 주간 회의에서 반바지를 입고 다녀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나의 모습을 감사하게도 회사의 어른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일에 대한 초년생의 열정으로 봐주셨다.

한편으로는 저 놈이 언제까지 버티나 하는 생각으로 관심병사 보듯 하기도 했는데 그놈은 그렇게 첫회사 3년이라는 교과서와도 같은 기준을 채웠다.

이후는 마치 세상이 나에게 보상이라도 해준다는 듯이 당시 내가 바라던 것들의 대부분이 충족되는 조건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충실히 맞이하는 것.

내가 타고 있던 것이 자전거라면 지금 눈 앞에 나타난 돌부리를 잘 피하기 위해 핸들을 움직여야 하고,

바로 눈 앞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 선택해야 하는 것.

그 지긋지긋했던 3년을 보내며 얻은 결론이었다.

넘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히려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더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 자전거처럼...


항상 다음 스텝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일 수는 없다.

계획하고 앞 날을 그리던 그 시기의 수준에서 알고 있던 것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누가 미래를 정확히 때려 맞추겠는가.

앞에 나타난 것을 선택하던 선택하지 않던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그저 바로 앞의 선택을 열심히 살아낼 뿐.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이, 타이밍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선택을 안 한 것을 선택해놓고 막연히 무엇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선택지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지금의 나에게 더 잘 맞는지를 따져보자 길을 따라서 계속 가다 보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누군가 나를 무엇으로 불러주는지에 따라, 또 나의 운빨에 따라

다음번 넘어질 방향이 어디인지, 피할 곳인지 넘어져도 될 곳인지 결정되겠지.

꽃으로 세상에 태어나 영락없는 꽃의 모습으로 생겼지만 누군가 꽃을 꽃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진정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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