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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Aug 12. 2020

적당한 그릇

사람과 행위를 담는 그릇, 공간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무엇인가 담기 위한 공예 작품 @ MO-NO-HA 한남동


무엇을 어디에 담을 것인가


호프집에서 모임을 하던 어느 날, 먹었던 안주 중에 젓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잔잔한 크기의 새우튀김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새우튀김은 여느 튀김 종류와 다를 것 없이 나무 소재로 짜인 바구니 같은 그릇에 얇은 습자지를 한 장 깔고 이쁘게 앉아있었다.

일반적인 분식집이나 튀김집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갓 테이블에 도착한 따뜻하고 맛있는 그 메뉴를 반대편에 앉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일부를 덜어 전달하고 또 신나게 웃고 떠들고 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구니에 담겨있던 새우튀김을 맛있게 다 먹고 아쉬운 마음에 테이블을 둘러보니 아까 반대편으로 전달했던 새우튀김이 아직 남아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숟가락으로 떠먹어 보니 이게 웬걸 눅눅하고 차갑게 식은 것이 조금 전까지 먹었던 것과 분명히 같은 새우튀김이었는데 그 맛은 전혀 달랐다.

덜어 준 새우튀김이 맛이 없으니 건네받은 친구들은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것이다.


단지 덜어서 줬을 뿐인데 그 이유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처음 튀김이 담겨있던 그릇은 습자지가 깔려있는 바구니였고, 덜어서 줬던 튀김을 담은 그릇은 오목하고 불투명한 흰색 유리그릇이었다.

넙적한 바구니는 비교적 통풍도 잘되고 튀김이 뭉칠 일이 없어 시간이 지나도 바삭바삭한 식감이 그대로 유지되었던 반면에 오목한 유리그릇에 담았던 튀김들은 그릇의 입구가 좁고 높으니 통풍이 되지 않아 튀김들이 서로 뒤엉켜 눅눅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똑같은 튀김이지만 그것을 담았던 그릇으로 인해 어떤 것은 다 먹을 때 까지 좋은 맛을 그대로 유지했고, 다른 하나는 채 끝까지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맛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사람과 행위를 담는 그릇, 공간


먹고 자고 놀고 쉬는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은 잘 계획되었는지,

가구의 높낮이와 배치는 불편함 없이 적절한지,

각 공간의 조명 밝기는 용도별로 적당한지 등등.


디자인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얼마나 아름다운지와 같이 심미적인 부분 또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그릇에 담을 사람과 상황, 그리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먼저 고려하지 않는다면 새우튀김을 바구니가 아닌 흰색 불투명한 유리그릇에 담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공간 또한 사람과 행위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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