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먼발치에서 보기
참신한 형태의 앵글이다. 파노라마 필름 카메라로 본 티베트. 그리고 그 카메라는 티베트에서 생명을 다 했다. 무겁고 둔한 본체를 높은 바위에 올라가 돌로 쳐서 산산이 쪼개서 전통 장례문화인 조장이래도 시켜서 보내야 했지만 가지고 와서 고쳐 팔았다. 티베트에서 몇 롤 찍고 몇 개월 내내 배낭에 넣어 다녔다. Noblex 135 탈 많은 카메라였다. 지금은 폰카에서도 쉽게 360도 찍을 수 있지만 필름을 두루마리처럼 훑어보는 맛과 암부와 명부와의 풍부한 계조는 폰카의 HDR 기능은 따라올 수가 없다. 구름과 사원 아래의 붉은색 담장을 보면 알 것이다. 터칭 하나 없는 한 장의 스캔 값이다. 왼쪽 담장 아래에 보면 일륜차처럼 생겼다고 할까 위성안테나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저 가운데에 주전자가 설치되어있다. 태양빛을 반사시켜서 주전자 아래를 달군다. 물이 끓을 만큼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과히 열이 엄청나게 나올 만큼 반사판이 이글 거렸다. 나무가 귀하고 태양이 가까운 이곳에서의 지혜다. 나는 그 지혜가 모잘라 무거운 돌을 메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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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내 사진, 첫 장에 있는 하늘 호수에 갔을 때 운명을 했다. 지혜가 모자라 몸을 고생하게 만든 카메라 말이다. 일주일쯤 라사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을 다녔다. 하늘 호수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나 그날 나와 한 사람이 밤에 아팠다. 내가 아팠던 이유는 단순하다. 과식! 절대 높은 고도에 가서는 음식에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처음 라싸에 도착해서 한족들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어설 때 몸에 힘이 풀리며 주져 앉을뻔했다. 소화시키기 위해 위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고도에 적응이 덜 된 상태의 몸으로 평상시처럼 휙 일어서며 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밤에 잘 때도 산소가 부족해서 갑갑해하며 잠을 깬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하늘 호수는 라사보다 천 미터는 더 높은 곳이고 체온을 보온할 수 있는 건 천막과 야전침대 담요 한 장뿐. 과식 후 그냥 지쳐서 잠들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 낮에 하늘 호수를 돌며 가지고 다닌 카메라와 배낭 그걸 메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전경을 담겠다고 산소도 부족한 곳을 기어서 올라갔는데 거기서 카메라는 고도와 저산소는 고장의 이유가 될 수 없지만 그러나 탈이 났다. 그날 카메라와 내 몸 둘 다 탈이 났다. 낮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 별다른 메뉴가 없던 허술한 식당에서 과식을 할만큼 배가 고팠다. 그곳에서 만난 한인들과 차 두대에 나눠서 갔었는데 그 날밤 상의 끝에 철수하기로 했다. 몸이 아픈 사람들 걱정이라고 했지만 사실 밤이 되자 불어오는 바람과 추위 때문에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몸간수를 못한 나도 미안했다. 칠흑 같은 밤을 뚫고 매서운 바람을 가르고 돌아오다. 차에 내려서 난 하늘 호수 식당에서 먹은 국수면을 다 토했다. 어둡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실려 형체도 보이지 않게 흝어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살아났다. 하늘 호수에서 가지고 온건 한쪽 귀퉁이에 담긴 호수 사진 한장이 다다.
이 길을 따라 어느 사원으로 갔는지 기억에 없다. 저기 붉은 가사를 입고 내려오는 승려들이 보이는데 기억에 남는 건 저 승려들이 던진 눈 뭉치만 기억에 남는다. 그 뒤쪽에 산은 지금 보아도 신비하다. 눈이 내려 갑작스럽게 설산이 되어 수분 안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산이지만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것같이 신기루로 보였다. 그 신기루는 저 먼발치에서 던진 살기가 담긴듯한 여러 발의 눈 뭉치에 사라졌다. 그 눈덩이에 맞았다면 우리 일행들과 주먹다짐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출가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승려들이어서 아직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쪽에서 이해하기로 했다. 눈싸움이 주먹싸움이 될 수도 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