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 Hey, Umm
한강을 건넌다. 너라는 섬에서 헤엄쳐 나와 드넓은 육지로 향한다. 섬 주인이 사라진 이후 급격히 시들어가는 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강물에 뛰어든다. 음파음파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동안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숨이 가빠온다. 코로 눈으로 목젖으로 혼탁한 물이 빠르게 들어온다. 한강 물맛은 아리수랑 달라서 요상한 맛이 난다. 도대체 이 물엔 어떤 오물들이 섞여있을까 떠올리다 헛구역질이 나서 켁켁댄다. 여기서 고꾸라지면 끝을 모르는 강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을 찾으려 굳게 다짐하고 뛰어들었는데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정신줄을 붙잡고 뇌에 힘을 주어 너덜너덜해진 몸뚱아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신호를 보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처한 긴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온몸으로 깜빡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이버 자격증을 따놓을걸. 누가누가 더 물 속에서 오래 춤을 참나 시합할 때 오기로 버티면서 숨참고 love dive할 걸. 길을 잃은 채 허둥대다가 꿀밤 한 번 때리고 조금만 더 힘내자며 나를 다독인다. 육지에 도착했을 때 움켜쥘 흙의 맛을 떠올리며 다시 바람개비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한참 동안 생존수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한강에 놀러 나온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형형색색의 텐트도 보인다. 깔깔 대는 소리도 들린다. 어? 진짜로 한강 공원이야? 망원이야 반포야 뚝섬이야 뭐야 어디야? 다 왔네. 맨몸수영은 처음인지라 첫 시도에 성공을 맛봐서 아, 또 해내버렸네, 역시 나야, 하고 자신감에 취할 때쯤 비둘기 한 마리가 시원하게 똥을 뿌린다. 으악! 소리를 지르고 다시 강가로 잘박잘박 들어가 도시 속 무법자, 비둘기의 배설물을 씻어낸다. 그리곤 다시 사뿐사뿐 밖으로 나온다. 땅이다. 말간 발이 땅에 닿는다. 어차피 나는 투명인간이라 나만이 너희를 볼 수 있고 너희는 나의 희미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발이 다치면 다니기 곤란하니 어떡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누가 버려둔 초록색 컨버스 운동화가 눈에 띈다. 사이즈를 확인하니 275다. 음, 나는 225인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아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축축한 발을 슬쩍 운동화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운동화를 질질 끌며 주위를 돌아본다. 그는 역시 없다. 혹시나 우연히 마주칠까 봐 빙 둘러봤는데 없다. 없을 걸 알면서 찾는 심리는 뭘까?
서로의 뒷배가 되어줄 줄 알았는데 양면테이프로 꼭 붙은 우리 사이에 끈끈한 접착력이 생을 마감할 때쯤 우리는 새로운 양면테이프로 옮겨가기보다 서로를 떼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서로의 뒷배를 잃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남자라고 생각해서 여생을 같이 꾸려가고 싶었는데 배 시간이 다 되자 그는 슬며시 거리를 두곤 저 멀리 사라졌다. 20대에 만나 30대에 헤어지는 우리는 연리목이 될 수 없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를 가장 잘 아는 남자를 떼어내기란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다. 논문을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그때는 레퍼런스가 있었는데. 도서관을 뒤적거리고 인터넷세상에서 샅샅이 뒤지면 뭐라도 건질만한 자료가 나왔는데 우리가 갈라지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참고자료도 지침서도 없었다. 단둘이 머리를 맞대어 꼬일 대로 꼬인 응용문제를 하나하나 쪼개서 풀어냈다. 우리에게 이혼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계속해서 질문한다. 쉽게 빈틈을 보이지 않던 그는 나에게만큼은 언제든 문이 열려있는 고민상담소이자 응원단원이자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날 이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떠나왔던 섬을 찾으니 섬조차 어디에도 없다. 섬도 자취를 감췄다.
가수: 빈지노
노래: Aqua Man
https://youtu.be/08h8u8Z9iJQ?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