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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Mar 24. 2024

난 달라진게 없는데

2020년 여름, 덜컥 독립출판을 저지르고 텀블벅 펀딩과 배송, 몇 몇 독립서점의 입고와 판매를 경험했습니다. 책을 만드는건 계속 해오던 일이니까, ‘직접’ 제작하는 것만이 새로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거리두기의 한복판이었기에 인쇄소 한번 안가본 채로, 간단한 편집과 단순한 사양으로, 제가 아는 방법만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예상했던대로 흘러갔어요. 그런데 지금껏 해오던 것과 가장 달랐던 건, ‘직접’ 판매하는 일이었습니다.


텀블벅으로 펀딩이 성공하고 후원자 리스트를 보는 건 예상치 못한 기분이었어요. 아마도 구매할거라고 생각했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이름이 가득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익숙한 이름 사이사이에, 다른 이름들이 있었어요. 누군지는 알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 작가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르는 출판 관계자분들, 그리고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름들이 이어졌습니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있어서 아셨을까? 텀블벅 메인 페이지에 잠시 떴던 것을 보셨을까? 누군가의 친구일까? 궁금하지만 끝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또 등장했습니다. 텀블벅을 보았는데 우리 서점에도 입고해달라는 메세지, 그림 모임의 친구들과 공동 구매를 할 수 있냐는 메세지 등을 받았어요. 사실은 아무 계획이 없었거든요. 남은 재고는 나중에 전시장에서 팔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책이 팔려나가고 여러 후기를 받아보고 알았습니다. 저는 ‘제작자’ 가 되어있었어요.


새로운 컨텐츠를 기획하고 만든게 아니라 그저 오래 해오던 일이 책이 된 것이었기에, 저는 저를 ‘제작자’로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어요. 몇 년 동안 꾸준히 그리고 업로드하던 것을, 그저 간단히 엮어 내놓았을 뿐이었거든요. 늘 하던대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독립출판도 하는 작가’,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림책 작가’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북토크 형식의 작가와의 만남이 아니라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드로잉 클래스’ 도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는 커녕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었어요. 저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그저 ‘꺼내놓은’ 것 뿐인데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걸 깨달으니 후회가 앞섰습니다. 그동안 혼자 방에서 꼬물꼬물 무언가를 해왔지만 적당한 기회가 없다며 포기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조금 더 용기를 낼 걸 그랬다고요. 하지만 아마도 이 작은 변화도 그동안의 연습이 쌓아준 결과일 겁니다. 이 자그마한 드로잉북 하나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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