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스타그램에서 데일리드로잉을 시작할 때는 2014년 초, 지금은 훌쩍 십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 그리다보면 그림 테크닉이 좋아질 거라는 가벼운 기대뿐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그리다 보니 말 그대로 드로잉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 그림이 나아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빨랐어요.
제가 즐겨 그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첫번째 스케치북 속에서 아장아장 걷던 첫째 아이가 젖먹이 동생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는 이제 어린이를 넘어,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애초에 ’사람 그리는 연습‘, 특히 ‘어린아이 그리는 연습’ 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의 육아 일기를 단골 모델로 삼았었거든요. 그 때 그 아기들은 지금 전부 어엿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아기들이 자라는 동안 저는 30대에서 40대가 되었고, 우리는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동물 가족들에게서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고양이 그리는 즐거움을 알려준 영국이가 떠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화면 너머로 예뻐하던 네 발 달린 동물 친구들이 여럿,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동물들의 시간이 우리보다 빨리 흐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년전 포스팅’ 이라며 제가 예전에 그린, 지금 만날 수 없는 동물 친구들의 그림을 보여줄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저 ‘일상적인 작은 드로잉’ 을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더 큰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그리는 연습을 하려고, 동물 그리는 연습을 하려고 친구들의 사진을 모델삼아 그리기 시작한 것 뿐이었는데 말이죠. 그림을 그린다는건, 시간과 감정을 기록해서 남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