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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an 26. 2020

[투란도트]

내 앞에 투란도트가 있었다

망국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가 냉혹한 공주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었던 것은 페르시아 왕자의 목이 떨어지던 순간이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그녀의 마음을 얼리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게 했다. 공주 투란도트는 구혼자들의 목을 베는 것으로 그녀의 슬픔을 대신한다. 차가워서 더욱 아름다운 공주에게 호기롭게 구애에 나선 젊은이들이 처연하게 스러져 갔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이 떨어진다. 수수께끼를 풀면 공주는 그의 것이 된다. 그러나 고결한 용기를 지혜가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 칼라프가 공주 앞에 선다. 문제는 셋, 목숨은 하나.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것은 <희망.> 투란도트의 문제를 왕자가 푼다.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 목숨은 하나, 수수께끼도 하나가 남았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마지막 문제를 내는 공주는 계단을 모두 내려와 목숨을 건 사내와 눈을 맞춘다. 공주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칼라프는 고민한다. 그의 앞에 그가 서 있는 이유가 있다. 그가 사랑으로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가워지는 얼음이 그의 앞에 있다. 그것은 바로 <투란도트!>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왕자는 승리했다. 그러나 여느 남자들처럼, 승리감에 도취된 왕자는 만용을 부린다. 쉽사리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공주에게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그가 수수께끼를 낸다. <동이 트기 전까지 그대가 나의 이름을 맞춘다면, 그대는 자유를 얻을뿐더러 나의 목숨까지 얻을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나의 것이 되어야겠지.> 그리고 그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그녀를 향해 위대한 그의 승리를 선포한다. 나는 승리하리라, 나는 승리하리라(Vincero)!

공주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왕자의 지인들을 찾아 고문한다. 칼라프를 사랑하는 하녀 류는 모진 고문을 홀로 감내해 내면서도 그 이름을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사랑은 강하기 때문>이다. 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칼라프는 그녀의 죽음 앞에 뒤늦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서 <죽음과도 같고 얼음과도 같은> 공주를 부른다.




푸치니는 여기까지 쓰고 생을 마감했단다. 오페라는 이 뒤로도 계속 이어지지만, 나 또한 여기까지만 쓰고자 한다. 내 앞에 투란도트가 있었다.

- 글을 쓰며 네이버캐스트의 <투란도트> 항목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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