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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Feb 01. 2020

일연이 마지막에 찾은 것

<고려사 일연 열전>을 읽고

  일연이 국존(國尊)으로 책봉된 것은 1283년(충렬왕 9년)의 일, 그의 나이 78세 되던 해였다.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이 대내(大內)에서 그에게 구의례(柩衣禮)를 올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일연이 궁궐을 드나들 때 조정 대신들이 그를 향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예를 올렸다는 것을 뜻한다. 나라의 스승으로써 그 영광이 어떠했는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일연은 국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에 이른다.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인간 된 도리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다만 9세에 출가하여 14세에 구족계를 받은 일연이, 78세의 나이가 되어, 그것도 국존의 반열에 오르자 갑자기 노모 봉양을 이유로 귀향했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지눌, 혜심 등 다른 선승들의 일대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조선조 사대부 퇴직의 명분이라면 지당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일연은 출가하여 종교에 귀의한 불자가 아닌가.

보각국사 일연 스님의 모습


  『삼국유사』이외에 일연의 찬술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것이 바로 『중편조동오위』이다. 조동종은 동산양개(洞山良价)가 창시한 선종의 일파로, 우리나라 선종의 아홉 종파 가운데 지눌이 속했던 수미산문(須彌山門)에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일연이 속하였던 산문은 가지산문(迦智山門)이었다. 고려 사회에서 선종 승려들은 왕명 없이 그 속한 산문을 바꿀 수 없었는데, 일연이 자기 산문도 아닌 쪽의 책을 펴낸 것이다. 심지어 그가 이 책의 서문에 적은, ‘평소 꿈꾸어 오던 일을 했다’는 부분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소에 꿈꿔 오던 일이 다른 산문 쪽의 책을 펴는 것이란 말인가?

  일연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일연이 왕명에 의해 강화도로 간 해(1261)의 기사인데 “遙嗣牧牛和尙,” 즉 멀리 목우화상을 이었다는 말이다. 목우화상은 지눌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지눌과 일연은 그 속한 산문이 서로 달랐던 까닭이다. 혹 지눌이 들여온 간화선(看話禪)에 심취한 나머지 일연이 마침내 그 산문을 옮겼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일연이 국존이 된 뒤 고려 선종계가 가지산문을 중심으로 교권이 확보된 것을 보면 산문을 옮긴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허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답은 일연 비문에서 마저 찾을 수 있었다. “수선(修禪)하는 여가에 다시 대장경을 읽고 제가의 장소(章疏,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글)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한편 유서(儒書)를 섭렵하고 아울러 백가서에도 관통하였다.” 지눌이 어떤 승려였던가. 타락해가는 고려의 불교를 일신하고자 수선사를 결성하고 혁신 운동을 벌였던 인물이 아닌가. 정혜쌍수, 교와 선을 따로 나누어 보지 말고 부처와 조사의 말씀과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여 참선할 것을 가르쳤던, 선종과 산문의 틀에 얽매이지 않았던 이가 바로 지눌이었다. ‘목우화상을 이은’ 일연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올바른 목적>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 다른 산문의 스승과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연이 생각했던 <올바른 목적>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무신 정권 말기의 정치적 어려움과 몽고의 침략 ․ 압제라는 당대의 혼란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혼미한 시대상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고 밀쳐낼 이유가 없었다. 역사 서술에 있어 기이하고 신비로운 요소들까지 당당히 포함시킨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종신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존의 위치에 오르자 이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스물여섯에 아들을 떠나보낸, 이제는 아흔여섯이 된 노모를 봉양하기 위함이었다. 가치 있는 것을 향해 <올바른 목적>을 향해 다른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았던, 불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었던, 그것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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