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Feb 02. 2020

대학시절

그리고 편견 한 자락

  대학 교수들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인문학과 앎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던 시절이었다. '사람답게 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선택한 공부였다. 책과 씨름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식을 평생 연구해 온 노 교수들 그 존재만으로도 어린 나를 압도했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 그들이 가진 식견과 지식의 깊이가 묻어 나온다 여겼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오직 그만을 바라보며, 세상에 오직 그와 나만이 있는 양 그를 우러르며 고개를 끄덕이고, 새로운 깨우침에 매 수업마다 몸이 떨려오는 경험을 하곤 했었다. 컴컴한 연구실, 책 속에 파묻혀 있다가 뿔테 안경을 내리며 한숨을 푹 내리 쉬던 늙은 현자들을, 나는 존경했었다.

  그들의 말은 기억에 남았다. 서양 근대사를 가르치던ㅡ굳이 장관이 되었다가, 일각에서 욕도 많이 드셨다ㅡ정 교수님은 항상 1교시에 강의를 열었다. 그의 하루 일과표는 30분 단위로 빽빽하게 짜여 있다고 했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내가 왜 가족도 없이 이러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수줍은 듯 웃던 얼굴이,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국 고대사를 가르치던 김 교수님은 싸움꾼이었다. 책과 문장으로 칼을 던지며 문파 하나를 뒤집어엎을 듯 일필로 돌진하던 그는 마치 장판의 조자룡을 연상케 했다. 글로 논문으로 계속 시비를 걸어대고 있는데, 그쪽에선 몇 합을 부딪혀 주더니 이젠 상대를 안 하려 한다며 늙은 교수는 아쉬운 듯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이걸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건방진 질문을 던지던 내가 그래도 기억에 남았는지, 졸업을 앞둔 나를 연구실로 불러내, 공부를 더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냐고 묻던 학과장 앞에 앉아 떨면서도 가슴 설레 하던 기억을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헬스장에서 쓸데없이 기운을 뺀다, 고 늙은 교수는 말했다. 책이라도 한 자 더 보고 머릿속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할 시간에 땀을 빼고 몸의 근육을 비대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소위 명문대라는 학교들 주변까지, 서점이 줄어들고 헬스장이 늘어나고 있다, 며 못마땅한 듯 언성을 높이는 그 앞에서 나는 또 연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렇지, 대학생이라면, 지성인이라면 의당 그래야지, 속으로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십 년 여가 지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2시간씩 땀을 쏟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하긴, 여기저기 과외를 뛰어 생활비를 벌던 그 시절에, 운동하겠다고 돈을 쏟아부을 여유 따위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고철인지 고무 덩어리인지, 아무튼 중력을 거슬러 덩어리를 쓸데없이 들었다 놓았다 낑낑대며 숨을 몰아쉬다가, 문득 그때가 생각이 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고난 습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