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by 농어

황 씨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고용되어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간단히 설명하면 일용직에 가까운 사내다. 40줄에 다른 그의 손은 두껍고 갈라졌고, 오랜 고된 노동으로 인해 50은 넘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돈은 꼬박꼬박 적지 않은 금액을 챙겨주었기에 가족들이 적어도 배는 곯지 않았다.

점심, 찌개에 동료들과 막걸리 한 잔을 했고, 어제 밤에 마신 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술을 집어넣었더니 꽤나 몽롱한 상태였다.

그 여파로 황 씨는 나르던 벽돌을 쏟아 깨부쉈고, 즉각 팀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팀장은 30대 초반의 허여멀건 사내로 그는 황 씨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황 씨, 이번이 도대체 몇 번 째요?"

팀장은 검은 뿔테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리며 그를 나무랐다.

"자꾸 이러면 나도 못 도와줘요. 지금 일자리가 없지 일 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야 알아요?"

황 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벌건 얼굴로 죄송하다만 연신 남발했다. 그때 팀장의 전화벨이 울리고 휴대폰을 내려 본 그는 굳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짓으로 황 씨를 내쳤다. 황 씨는 다행히 오늘도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떴다.

팀장은 전화를 받아 굽씬대더니 이내 사무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엔 대기업의 하청 담당 과장이 와 있었고, 그는 팀장에게 도대체 건설 진도가 왜 이렇게 안 나가냐고 핀잔을 주었다.

"이게 비도 오고, 돌 때문에 땅을 좀 더 파내느라 시간이랑 비용이 더 들어가서... 최대한 빨리 진행시키겠습니다.


"하아. 일 하루 이틀 해요? 적당히 요령껏 넉넉히 시키고 해도 우리가 뭐라고 안 하잖아요?"

지랄. 지난주에도 와서 비용 청구 내역 가지고 몇 시간 생쑈를 한 것은 잊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인부들에게 압력 넣어 보겠습니다."

직원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이내 표정을 풀었다.

"아니 뭐 그렇게 까지 할 건 없고... 서로 좋자고 하는 건데 잘 하자는 겁니다 크흠.."

그제야 팀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고, 혹여 이럴까 준비한 봉투를 외투에서 꺼내 건넸다.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아아 됐어 됐어 내가 뭐 돈을 달랬나."

그는 손사래를 치며 곁눈질로는 봉투를 흘끔거렸다.

"아유 다 과장님이 도와주신 게 감사해서 그래요. 전 드리려고 왔으니까 모릅니다. 지금 현장 좀 봐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팀장은 잽싸게 사무실 밖으로 나섰고, 과장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안에는 빳빳한 5만 원권이 100장 들어 있었고, 이는 과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회사로 돌아온 과장은 부장에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했고, 부장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과장을 노려봤다.

"조 과장 담배나 한 대 피지?"

과장은 속으로 욕을 한껏 내뱉었다.

"아 예 그럼요. 나가시죠."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 부장은 담배를 꼬나 물었다. 과장은 불을 붙여주며 조심스레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안 그래도 요전에 따님 학원비 얘기에 마음이 찜찜했는데 하청업체도 부장님 고생을 알았나 봅니다."

부장은 흔쾌히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곤 봉투에서 돈을 슬그머니 보더니 10장 정도를 꺼내서 과장에게 도로 건네었다.

"자네도 현장 왔다 갔다 수고가 많네, 이걸로 술이나 한잔해."

과장은 감동받은 표정을 지으며 돈을 받았다. 화기애애하게 돌아온 뒤 과장은 화장실로 돌아가 200만 원이 든 봉투에 부장이 준 50만 원을 합쳐 반은 건졌다며 실소를 흘렸다.


부장은 의외의 소득에 이 비자금을 어디에 숨길 지를 고민하던 중 사장의 호출을 받았다.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서류를 집어던졌고, 부장은 얼굴에 정통으로 맞아 얼얼하지만 내색을 못하고 뒷짐을 진채 꼿꼿이 섰다.

"이 부장, 왜 분양이 이거밖에 안돼? 이번 프로젝트에 돈 얼마 들어갔는지 몰라?"

부장은 붉어지려는 얼굴을 안간힘을 쓰며 참아냈다.

"아직 분양 초기이기도 하고 투기꾼들 분위기 조성 시작도 안 했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사장은 얼굴을 구겼다. 가뜩이나 주름이 많은 그의 이가 불도그 모양처럼 변했다.

"넌 내가 말 안 하면 알아서 처리를 못하냐 아직도? 니가 그러니까 아직도 만년 부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언제까지 그러다 짤릴래?"


"... 죄송합니다."


사장은 의자를 돌리며 축객령을 내렸다. 이 부장은 쳐다 보지 않는 사장의 뒷모습에 인사를 날리곤 뒤로 돌아섰다.


"에휴 쯔쯔 회사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네." 부장의 뒤로 독설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부장이 나간 뒤, 퇴근을 준비하던 사장의 전화가 울렸다. 스크린에는 "공주님"이라고 떴고 사장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응~ 우리 딸 왜 전화 주셨을까? 아빠 곧 퇴근해."

수화기 너머로 딸이 소리쳤다.

"아빠! 왜 용돈 올려달라고 했는데 그대로 보냈어? 내 말 듣긴 했던 거야?"

그제야 사장은 지난번 술김에 딸의 투정에 용돈을 올려주기로 했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 딸, 그 아빠가 그때는 술에 취했기도 하고 너 공부하는데 고등학생이 한 달에 용돈이 왜 50만 원이나 필요하니.."

말끝을 흐리자 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 몰라 더 안 보내주면 나 이제 아빠랑 말 안 해! 끊어!"

뚝. 끊긴 전화는 그와 딸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아 사장은 마음이 어그러졌다.

그리곤 한숨을 쉬며 딸의 카드로 20만 원을 입금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딸의 사진을 보며.



그 사진의 아이가 자라 어느덧 고등학생인 그녀는 아빠에게 강경책이 성공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잽싸게 화장품 샵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그리고 봉투를 들고 땀이 나게 뛰어 상가 사이의 어느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엔 담배향이 자욱했고, 미세먼지와 스모그, 담배연기가 섞여 눈이 매웠다.

"하나야 여...여기 이거 맞지?"

그녀는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는 노란 머리의, 하나라고 불린 아이에게 봉투를 건넸다.

"야. 내가 이거 색 뭐로 사 오라고 했냐? 이게 몇 번째야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하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아악! 아파 하나야 아파!"

어느새 그녀의 눈엔 눈물이 그렁했다.

머리를 놔주자 그녀는 봉투를 받아 영수증을 들고 다시 화장품 매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제대로 사 왔는지 하나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한 번에 잘하면 좋을 걸. 꼭 사람 나쁘게 만들어 그렇지?" 주위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담배를 꼬나물고는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야 됐어 이제 가. 이따 밤에 데이터 선물 보내 놓고

"

그녀는 눈물을 겨우 삼키며 응 이라고 대답한 뒤에 골목을 벗어났다.

하나는 역시 돈 많은 호구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새로 받은 화장품을 발라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친구들과 헤어져 집 앞에 도착한 하나는 낡은 빌라를 바라보자 한숨과 짜증이 밀려들었다.


집으로 들어가자 술냄새가 가득했고, 그의 꼰대 아버지가 그녀를 향해 호통쳤다.

"황하나! 내가 일찍 다니랬지? 가만, 담배냄새?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아빠 아니야 아니야 친구들이 핀거야 난 옆에만 있었어"

하나는 필사적으로 아빠에게 빌었다.

아빠는 병을 들었지만 거친 호흡을 내쉬며 다시 내려놨다. 이래서야 실수 좀 했다고 소리부터 지르던 팀장과 다를 바 없었기에.

대신 나직이 화장이랑 담배냄새를 한 번만 더 풍기면 딸이고 나발이고 없다고 나직이 협박을 했을 뿐이다.


황씨는 술이 떨어졌기에 더 사러 나갈까 생각했지만 내일도 술이 안깨서 자재를 떨어뜨리면 한 소리 듣는 것 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직감이 들었다.


빌어먹을 아침은 간만에 미세먼지도 없이 맑았다. 눈이 떠지지 않으면 죽은척 하고 싶었지만 숙취에 속이 쓰려 잠이 일찍 깨버렸다. 황씨는 딸의 방문을열었다. 딸만큼은 이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뭘하고 다니는지 쩐 담배냄새와 얼마 주지 않은 용돈에 비해 가득찬 낡은 화장대만 눈에 들어왔다.


황씨는 출근을 하다 거지줄에 걸린 날벌레를 보며 지옥같은 사회에 갇힌 자신의 모습 같다고 느끼며 일터로 향했다.


거미는 날벌레를 먹었고, 거미를 참새가 날아와 잡아 먹었다. 참새는 어느덧 옆에 다가온 고양이에게 잡혔고, 고양이는 길고양이를 잡아다 파는 고양이 장수에게 포획되었다. 고양이 장수는 대충 애견샵 같은 곳에 싸게 고양이를 넘기고는 다음 고양이를 찾으러 다녔다. 며칠 전 아들이 대학에 붙었다며 등록금으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여전히 그의 속을 쓰리게 했다. 삶은 뭐 어쩌구 희극이고 어쩌구 비극이라고 말 하던 아들의 모습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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