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물이나 동물, 사람, 건물 등을 그릴 때 내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그리면 엄청나게 이상한 형체의 그림이 그려진다. 사진 등의 실물을 보고 그리면 큰 문제가 없는데 생각만으로 그리면 그렇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러한 대상들에 대해 나만의 왜곡된 형태가 형성되어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끼리나 사자, 컴퓨터, 스마트폰, 전철역 등에 대해 내 머릿속에 그러한 형체들이 왜곡되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이건 마치... 길치 같잖아. 원래 나는 한 장소에 약 스무 번 정도 방문해야 그 장소가 대충 파악이 된다. 이것은 즉, 어딘가에 한두 번 방문하는 것으로는 절대 길치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번 가본 그 길은 왜곡된 채 머릿속에 남는다. 여러 번 같은 곳을 찾아가면서 왜곡을 수정해가다 보면 지도가 그려진다. 매우 추상적인 나만의,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지도 말이다.
결국 '완성'이라는 것은 왜곡을 수정해가는 일이 아닐까. '인생'의 궁극적 방향도 왜곡을 수정해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는 왜곡이 필요하고 수없는 왜곡 수정의 시도가 필요하겠지. 먼저 시도하고, 왜곡되면, 수정하고, 그렇게 완성해가는 것.
길치에게도 희망은 있다.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바다를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