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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Oct 31. 2021

스파게티와 판타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소재는 '사람'이다. 인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나 포즈 등을 핀터레스트에서 발견하면 '인스피레이션' 폴더에 집어넣어 두고 나중에 하나씩 마음에 드는 것부터 그린다. 하지만 원본 사진에 관계없이 다 그려놓고 나면 사진 속 인물과는 전혀 딴판인 그야말로 '해처럼 월드'의 한 등장인물로 탄생하여 눈앞에 나타난다. 어떤 인종을 그리건 결과적으로 '해처럼 월드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물들 중에서도 젊은 여성과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장 흥미로운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압도적으로 여성들의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된다.


​​


반면 남성을 그리면 어쩐지 내가 그린 인물이면서도 낯설다. 낯설다는  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번도 만난  없는 얼굴이 나타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누구세요?' 그러게 그는 누굴까. 요즘 같아서야 모르는 남성을 만날 일이 전무하고 아이돌이며 스타들의 세계에는 관심이 1 없는 사람인 데다, 하물며 요리를 하고 있는 남성이라니...  


아무튼 해처럼 월드에 새로 탄생한 이 남성은 막 스파게티를 삶았다. 아마도 그는 적절한 크기의 아파트에 혼자 살며 성격은 원만하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다. 30대 초반쯤이라고 해두자. 누군가 놀러 왔는지 스파게티는 2인분을 만들었다. 사실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남성은 리얼리티의 세계에서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하루키 월드의 주인공들 정도? 같은 면이라도 라면을 삶는다는 것과 스파게티를 삶는다는 행위의 차이는 김치와 피클만큼이나 분위기가 다르다.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간극 같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파게티를 삶는 남성' 그림은 그러니까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굳이 그의 귀가 뾰족하거나 찰랑거리는 긴 금발에 천년 정도의 수명을 가질 필요도 없다.


​​


갑자기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 져서 점심으로는 스파게티를 삶았다. 마침 조개가 있어서 봉골레를 만들었는데 양 조절에 실패하여 너무 많이 먹어 저녁은 생략하기로 했다.



스파게티를 만드는 판타지적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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