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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Nov 02. 2021

이미테이션 어른

처음 트렌치코트를 입은 건 아마도 20대 중후반이었을 것이다. 하던 일의 성격상 딱히 정장스러운 옷이 필요하지 않았고, 트렌치코트는 내게 있어 꽤나 정장스러운 차림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당시에는 캐주얼하게 트렌치코트를 입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트렌치코트'라는 명명도 하지 않았고 다들 그저 '바바리' 또는 '바바리코트'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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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 ''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이상성욕자가 되어 버리는 웃픈 현실이 분명히 있었고 살면서  바바리맨을 맞닥뜨리지 않은 여성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마을에 '동네 바보형'  있는 것처럼 여학교 주변에는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경력이 쌓여가며 조금 직급이(?) 높아지게 되니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일이 심심찮게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이제 슬슬 트렌치코트를 사둬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최대한 지갑을 두둑하게 채운 뒤 백화점으로 향했다. 명품 딱지가 붙은 것은 논외였고 여성복 매장을 돌아다니다 특가 할인을 하고 있는 트렌치코트를 발견했다. 그렇게 마련한 트렌치코트를 봄이면 꺼내 입고 가을이면 또 반갑게 꺼내 입으며 긴 세월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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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를 입은 나는 어쩐지 그럴싸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제대로 성장하여 이 사회에서 괜찮은 임무를 부여받은 정예요원이 된 것 같았다고나 할까. 비록 실상은 어설픈 이미테이션 어른이었다 할지라도.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혼자서 음식점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혼자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셔도 괜찮았다. 지금에야 혼밥 혼카페 문화가 널리 퍼져있지만 그땐 그렇지가 않았고, 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였던 것이다. 트렌치코트는 연극의 코스튬처럼 그것을 걸친 순간의 역할에 대한 의미부여를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돌아보면 너무 웃기지만.


나의 인생 첫 트렌치코트는 두 번째 트렌치를 산 이후에도 한 동안 버리지 못하고 옷장 안에 걸어 두었었다. 다시 입을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버릴 수는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어른이 된 느낌'을 가졌던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옷장만 차지하던 그 트렌치코트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인의 그림을 그리며 나도 모르게 20대의 자신을 떠올렸다. 어리바리 시작한 사회생활 속에서 내 연약함과 물렁한 자아를 들키고 싶지 않아 코트를 꽁꽁 여미며 감추고 있던 아직 어린 나를.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여전히 트렌치코트를 사랑하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들을 사랑한다.






그녀는 아직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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