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고를 때는 무조건 무채색으로 하는 습성이 오래되어 무채색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부터 내가 얼마나 컬러를 좋아하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한해 한해 거듭 살아오며 외향으로 나이를 먹어 어른인 척하고 살고 있지만 실은 뼛속까지 어린애인 것을 고백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슐러 르 귄은 자신이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낸 그 집을 평생도록 단어로 재현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고백하듯 말했고, 그녀의 그 말에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 여전히 거듭거듭 깨닫곤 한다.
그림을 그리며 판타지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입을 수 없는 것을 입고, 갖지 못하는 것을 갖고,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림 속 그들은 나이기도 하며 내가 아니기도 하다. 마치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의 자아와 에세이를 쓸 때의 자아가 일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차이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 김중혁은 말했다.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라고.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입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 처음엔 알지 못했는데 이제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가을로 달려간다. 꽃 패턴의 롱 원피스를 입고, 목에는 핑크 스카프를 발에는 핑크색 운동화를 신고 빨간 가방을 든 채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향해. 그리고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곳에서 멈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