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감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장소 중 특별한 한 곳은 언제나 서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글자를 읽기 시작한 꼬맹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도서관이 잘 되어있는 시절도 아니었고 (도서관은 대부분 학습을 위한 열람실 위주였다) 대량의 책들이 한데 모여 있는 풍경은 나로선 서점 외에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살던 곳에 서점은 딱 하나뿐이었다. 서점만 하나가 아니라 은행도 하나, 백화점도 하나, 시장도 하나, 교회도, 성당도 하나, 영화관도 하나, 약국도 하나였다. 어쩌면 내가 돌아다니던 영역 밖에 또 다른 서점과 백화점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랬겠지. 오직 인식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내 어린 날들에는 주변이 온통 죽으로 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모든 것은 딱 하나였다. 물론 정확한 사실과 기록은 앞으로도 절대 찾아보고 싶지 않다.
딱 하나였던 '그 서점'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높이높이 책이 쌓여있거나 꽂혀 있었다. 조그만 나의 시선으로 본 책들은 미지의 신대륙이었고 언젠가 그 대륙을 내 손으로 펼쳐볼 수 있길 바라며 책들의 냄새와 분위기 속에서 황홀해하곤 했다. 서점의 주인 아들은 같은 학교 동기로, 종종 같은 반이 되곤 하던 아이였는데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가끔 서점에 가면 그 아이는 언제나 구석에서 뭔가를 읽고 있었다. 키가 작은 나보다도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아무튼 말수 없는 그 애가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언제나 서점에 앉아 원하는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점만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시간이 지나 그 고장을 떠나 우리 집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고 이전보다는 꽤 큰 도시였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던 서점은 역시 딱 하나였다.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사기 위해 종종 그 서점에 갔고 때로 문학서들을 훑어보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서서 책을 읽기에는 주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종종 용돈을 모아 책을 살 때는 항상 그 서점에서만 사곤 했다.
그 시절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은 딱 한 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책을 잊을 수 없다. 다니던 중학교가 카톨릭계 학교였는데 학교 내에는 성당도 있고, 그리고 자그마한 도서관도 있었다. 도서관은 아담한 2층(혹은 3층) 건물이었는데 서양의 가정집 같은 모양새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 도서관에서 소설책 한 권을 빌려 읽었었다.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은 잘 기억하고 있다. <검은 눈동자>라는 소설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프랑스 소설을 일본 작가가 번역해서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가톨릭과 관련이 있다는 추론이 있는데 그런 이유로 가톨릭 중학교인 우리 학교 도서관에 그것이 있었구나 싶어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같은 제목의 보들레르의 시와도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자 주인공은 깜짝 놀랄 만큼의 미인이고, 말을 타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고, 로맨스가 풍부했다. 나는 마음이 떨렸을 것이고 그 감정의 기억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작은 조각으로 아직 남아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고딩 소녀가 되어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다) 맘이 맞는 친구와, 또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종로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버스는 교보문고 앞에 착~ 도달해있었다. 그 대형서점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책들을 만났고, 책을 다 읽진 못하더라도 작가와 작품을 매치시키는 놀이에 빠져 고전 작품과 작가를 다 외웠던 것 같다. 외우려고 외운 것이 아니라 하도 많이 바라보다 보니 뇌에 새겨졌던 것이다. 때로는 딱 들어맞는 대단한 수학 문제집을 - 손으로 써서 출판한 - 발견해 수학 성적이 오른 적도 있다. 서점의 대형화 때문에 작은 서점들이 힘들다고는 해도 그런 개인적 경험들이 대형 서점에 대한 내 고마움을 없애지 못하는 것 같다.
또 긴 시간이 흘렀고 외국에 와서 - 공부 목적이 아닌 - 지내게 되면서 역시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해 서점을 들락거렸다. 대개는 어린 딸과 함께였기에 그림책 코너를 서성거렸고, 아이는 그림책을, 나는 온갖 테마의 잡지책을 뒤적거렸다. 한자에 취약한 나는 그림과 글이 반반 혹은 그림이 훨씬 많은 책들에 자연스레 끌렸고 그렇게 처음으로 잡지의 매력에 풍덩 빠져 버렸다. 잡지는 곧 패션지라고만 생각하며 폄하했던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였다. 그곳에 철학이 있고 스타일이 있고 취향이 있었으며 결국 인간의 삶을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시대는 텍스트에서 이미지의 시대로 변모했고 그 흐름에 잡지는 적확한 매체였다.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은 초등 입학 이전까지는 글자 교육이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유치원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혹시 아이를 일본어에 빼앗길까 봐 단지 한글만 다 떼고서 유치원에 보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는 아무런 글자를 가르치지 않고 글자를 가르치는 것을 우려했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글자로 읽고 해석하기 전에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느낄' 필요가 훨씬 더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교육철학을 외국의 서점에서, 까막눈으로 그림을 보며 감동하며 몸으로 체감했다. 글자를 술술 읽을 줄 알았더라면 그림보다는 문자가 눈에 더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린 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를 통과한 시간이 책과 함께, 그것이 놓여있던 어딘가의 서점을 같이 통과하며 자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때로 텍스트의 형태이기도 했고 이미지의 형태이기도 했다. 텍스트는 내 안에 들어와 이미지로 형상화했으며, 이미지는 내 안에 들어와 그 연장선과 연속을 이루는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그 두 가지가 한데 뭉쳐 하나의 책을 이루고 나를 이루어왔음을 이제는 안다.
사람은 지독한 순간에도 '떠올리면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풍경'이 있다면 절망의 끝에서도 일어설 수 있다는 말이 있다.(아마 소설의 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햇빛이 가득 들어오던 거실이라든가, 뛰놀던 운동장, 조그만 장난감이 놓인 작은 방, 불빛이 반짝이는 겨울의 거리... 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것의 하나는 책이 가득 놓여있는 어떤 서점의 풍경이다. 책이 가득 있고 그것을 뒤적이는 사람들의 풍경 말이다. 그런 풍경이 지속되는 한 인류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긍정이 든다.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