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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시와 라멘의 나라

by 해처럼

여름방학을 앞두고 ‘방학 동안 저희는 한국에 다녀와요’라고 말하면 유치원 엄마들이나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 어머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오겠네요! 한국은 정말 맛있는 것 너무 많죠!!


일본인들에게 한국이 ‘맛있는 것들이 엄청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다. 언제나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네?! 하며 놀랐다. 한국인 거리로 유명한 도쿄의 신오오쿠보라는 동네는 평일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일본인들 뿐 아니라 여타 국적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드는 이유는 한국산 화장품이나 한류스타의 포스터를 구입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으나,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인기 있는 음식은 불고기, 떡볶이, 부침개, 찌개류 등등 끝도 없다. 일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던 날 메뉴를 김치볶음밥과 김밥으로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 친구는 동그란 김밥 안의 이런저런 재료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색의 조화가 참 예쁘다고 말했다. 김치볶음밥은 요리 초보가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메뉴랄까.



일본에 와서 특별히 음식이 안 맞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의 식재료가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으니. 단순하게 말하자면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른 요리를 하는 것뿐이었다. 다만 양념이 다르고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식재료들은 대부분 교집합으로 겹쳤지만 겹치지 않은 재료들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이를테면 깻잎처럼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류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생선류 중에서 잘 말린 조기라든가 낙지, 갈치 같은 것들은 동네 슈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다.



일본의 일반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이 궁금해 가정식을 파는 음식점에 가본 적도 있다. 흰쌀밥과 생선구이, 야채 조림 두어 개에 미소시루가 곁들여 나왔는데 숟가락을 주지 않아 난감했다. 알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카레라이스나 스튜 등을 먹을 때 말고는 숟가락을 쓰지 않았다. 국물을 마실 때는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그릇을 손으로 들고 마신다. 그래서 국그릇은 한 손으로도 잡기 쉽도록 작고 가볍게, 오목한 모양으로 만든다. 나는 젓가락 사용법이 남들과 달라 숟가락과 포크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어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일본 친구에게 일본에서는 왜 밥그릇과 국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거냐 물었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하길,


- 일본에서는 그릇을 들고 먹지 않는 건 강아지, 고양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여기거든.


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지 물어와서 ‘한국에서는 과거에 집 없이 떠도는 홈리스들이 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구걸해 밥을 먹었기 때문에 밥상 위에 그릇을 두고 먹도록 가르침 받는다’고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말해 주었다. 각자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아아, 이런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지도.





꽤 오랫동안 살면서도 입에 딱 맞는 일본 음식은 많지 않다. 물론 내가 토종 한국인 입맛이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가장 맛있는 건 역시 스시! 일본에서 처음 생활했던 곳이 바닷가 마을이었기 때문일까? 갓 잡은 생선회도 맛있겠지만 적당히 숙성된 회를 초밥에 얹어 먹는 맛은 그 이상이다. 동네 슈퍼 어디에나 파는 스시를 사 와서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거나, 회전 스시집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스시를 집어먹는 것도 재미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회전스시집의 회전 구조는 위생상 문제가 되어 사라졌거나, 접시에 투명한 뚜껑을 씌우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유명한 어느 일본 영화에서 표현하듯 일본인의 소울푸드는 오니기리가 맞지만 진정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은 스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시집에 가서 내가 먹는 메뉴는 정해져 있다. 연어, 새우, 그리고 광어. 때때로 장어.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시는 연어가 1위, 참치가 2위라고 한다.



스시 외에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면 ‘라멘’이다. 음식 가게가 생기면 라멘집 아니면 스시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라멘에 진심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라멘들이 있을 정도. 어디에나 수많은 라멘집이 있고 라멘집마다 개성이 있고 독특한 맛이 있다. ‘라면’과 ‘라멘’이 다른 음식이라는 걸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라면도 라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친구나 손님이 오면 추천하는 라멘집이 두 곳 정도는 생겼다. 특히 국물을 부어먹지 않고 면을 살짝 국물에 담갔다가 먹는 ‘츠케멘’류를 좋아해서 종종 찾곤 한다. 문득 츠케멘이 먹고 싶어질 때면 내가 일본에 완벽히 적응했구나 싶어 스스로를 신기하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먹었던 잊을 수 없는 음식은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남편이 끓여 온 미역국이었다. 일본에는 산후조리원 같은 시설이 없어서 나는 출산 후 열흘 정도를 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뜨거운 여름이었던지라 병실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다. 산모라고 해서 특별한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건강식에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도 나오고, 아이스티도 나왔다. 그래도 미역국은 먹여야 할 것 같았는지 남편은 병원 근처 유일한 한국 음식점 주인 아저씨가 출산 선물이라며 주신 최상급의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여 왔다. 정성이 눈물겨웠지만 미역이 잘 익지 않아서 약간 고무 씹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만이 촉촉하게 남아있다. 출산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아이를 낳았기에 먹을 수 있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히가짱은 말한다.


- 자기가 먹는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이 되는 거야.


그런가. 내가 먹는 것들이 나 자신이라면 모든 음식은 소중하게, 정성껏 재료를 골라 가장 맛있게 만들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는 거겠지? 때때로 음식 만드는 것이 귀찮아서 대충 먹고 싶을 때 그녀의 그 말을 떠올리고 끄응차, 몸을 일으켜 슈퍼에 다녀오곤 한다. 그녀의 그 말은 진심으로 우러난 말이어서 힘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아쉬운 것은 언제든 배달앱으로 맛있는 음식을 빠르게 배달해 주는 한국의 배달문화라고 할까.

남편과 나는 종종 이런 말을 주고받곤 한다.


- 한국에서 날씬함을 유지하기란 진짜 어려운 일일 거야.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참고서 말이지.

- 정말! 대단해!!




잘 먹지 못하면 잘 생각할 수도, 잘 사랑할 수도, 잘 잘 수도 없다.”

-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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