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살면서도 일본어 쓸 일이 별로 없던 나는 마치 '군중 속의 고독'이나 ‘등잔 밑의 어두움’ 못지않게 ‘일본 속의 무(無) 일본어’의 삶을 살아왔다. 주로 만나고 교류를 맺고 있는 이들은 한국분들이었다. 그나마 가장 깊이 일본 사람들을 매일 만나고 교제를 했던 시기는 아이의 유치원 3년에 한정되어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외출할 때 거리나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또는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일본어를 접하는 것이 다였다. 집에서도 당연히 한국어만 사용했고 일본어는 쉽사리 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모국어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물이나 공기처럼 어느 순간 우리의 입술과 생각을 적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두 돌 즈음이던 어느 날, 아빠의 손이 자신의 장난감에 닿아있자 손을 스윽 치웠다. 그러면서 ‘스미마셍(실례해요)’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때때로 기분이 내키면 인형들을 바라보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 라든가 ‘곤니치와(안녕)’ 같은 인사말들을 하며 놀기도 했다. 폐로 호흡하는 우리가 공기를 피할 수 없듯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곳의 언어는 노크도 없이 스르르 밀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미마셍, 아리가또, 곤니치와’ 딱 그 세 마디 일본어 밖에 할 줄 몰랐던 아이를 일본 아이들만 있는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걱정도 잠시, 약 2개월 만에 친구들과 놀고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한창 유치원 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된 어느 날, 하원을 기다리며 다른 엄마들과 함께 유치원 정원에 서 있는데, 나를 발견한 아이가 활짝 웃으며 크게 외쳤다. 물론 일본어로.
- 난 일본인!
하하하. 나도 모르게 아이와 같이 웃어 주었다. 곁의 다른 엄마들도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 며칠 후에는 자신은 한국인이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한다고 했다. 소규모의 유치원이어서 같은 해에 입학한 아이들이 20여 명 정도 되었는데 모두 사이가 좋았다. 엄마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이가 좋았다. 일본에서는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부모가 모두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집의 아이들은 보육원(한국으로 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가 워킹맘이 아닌 경우는 유치원에 보낸다. 유치원은 하원 시간이 빠르고 엄마들의 참여가 많은 편이다. 자연스레 엄마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았다. 유치원이 끝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유치원 옆 공원 놀이터에 모여 두세 시간을 또 실컷 놀고 헤어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것이 유치원의 철학이고 그곳에 아이들을 맡긴 엄마들의 철학이기도 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공부’인지 확실하게 배우기도 했다.
내 일본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엄마들과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다들 ‘조그만 내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했구나!’라는 경이로움에 들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출산에 관련된 이야기만으로도 친구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다 보면 딸들의 엄마들은 딸의 엄마들끼리, 아들들의 엄마들은 아들 엄마들끼리 더 친밀해졌다. 아이들이 고교생이 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들은 그때 친해졌던 엄마들이다.
유치원에서의 모든 만남이 나에게는 진짜 일본이었다. 여러 종류의 유치원 중에서도 그곳을 선택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때로 사전을 찾고 번역기도 돌려가며 혹은 바디 랭귀지까지 동원하여 애써 대화에 참여했다. 재미는 있었으나 뇌의 과부하 탓으로 집에 돌아오면 1시간 정도는 소파에 뻗어 있어야 했다. 때로 내 일본어가 너무 이상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언젠가 그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자 나와 동갑내기인 한 친구가 말했다.
- 그게 어때서? 말보다 마음인 거야!
그 말이 어찌나 따뜻했던지…… 그녀의 목소리와 뉘앙스마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몇 안 되는 일본인 친구는 그렇게 감동을 주었고, 말보다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말‘ 즉 ‘언어’라는 것은 마음만큼이나 중요하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목소리가 고유한 자신만의 것이듯 언어도 그 존재의 고유한 것이다. 어떤 표정을 한 언어들을 그 안에 쌓아왔는가에 의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언어의 결이 형성되는 것이다. 편협한 의견일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의 격이 얼굴에 배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타국에서 '언어' 때문에 무진장 고생하고 있는 나로선 아이의 언어 교육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몇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엄마의 욕심 같은 것이 아닌,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기를 바라왔다. 두 언어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지침을 준 것의 하나는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어느 강연 내용이었다.
- 능숙한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전달하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언어란 전달하고 싶은 것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역시 모국어 능력입니다. 나는 모국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머릿속 생각도 역시 언어로 하는 법이니까요.
여러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도 한 언어에 깊이 잠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를 ‘0개 국어 능력자‘라고 낮추어 고백하기도 한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모국어가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어떤 건물을 짓고, 어떤 장식을 한다 해도 부실한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모국어는 뼈대 같은 것이다. 생각을 담는 원초적인 언어는 엄마의 태내에서부터 들어온 모국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나도 긴 타국살이 탓인지 나이 탓인지 모르지만 가끔씩 특정한 한국어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당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생선 이름처럼 한국에서 아주 흔하게 쓰는 단어도 가물가물할 때가 있어 큰일이다. 한국어도, 일본어도 결국 어중간해져 그야말로 0개 국어 구사자가 될까 봐 긴장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더 책을 붙잡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며 더 나은 단어들, 표현들을 고심하곤 한다. 실은 한국어로 된 책을 언제나 마음 깊이 그리워하며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국을 떠나서야 실감했다. 가장 잘 아는 언어에 대해 가장 큰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언어의 집에 인간이 산다.
사색하는 자들과 단어를 가지고 창조하는 자가 이 집의 지킴이들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