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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생의 모토

by 해처럼




거리를 걷는 중에 만약 누군가 불쑥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후회하는 것. 그게 제일 두려워요.




인생에서 가장 많은 후회를 하던 순간, 나는 수술을 앞두고 한 종합병원의 침대 위에 있었다. 대략 이런 감정들이었다. 나는 그간 왜 감사하지 못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충분히 고마워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매번 불평하기만 했을까? 운전면허도 없다니 너무 게을렀다. 왜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내 몸을 어째서 좀 더 소중하게 챙기지 못했을까? 등등. 그리하여 그 뒤로는 후회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모든 것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모든 기쁨은 그 순간 그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면 영원히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살면서 두 번의 수술을 했다. 둘 다 일본에서였다. 첫 번째는 제왕절개 수술이었고, 두 번째는 내 몸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유방암이었다. 아이가 네 살이었고 유치원에 입학해서 한창 재미나게 적응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의아하게도 같은 유치원에서 나를 포함해 총 세 명의 엄마들과 한 명의 선생님이 같은 시기, 같은 병에 걸렸다. 비슷한 시기에 수술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항암을 하며 치료했다. 누군가에게 옮기는 종류의 질병도 아닌데 조그만 유치원에서 똑같은 병에 걸린 일은 여전히 기묘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서로 격려해 주며 함께 이겨내라는 운명의 인도함이었을까?



우연한 계기로 병을 발견하여 수술 날짜도 큰 어려움 없이 빠르게 잡고, 좋은 병원에서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나를 소중하게 보살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병원은 한국과 달리 간병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간병인이 하는 일들을 간호사분들이 다 해준다. 보호자가 밤에 병원에서 숙식하며 간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주 어린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보호자는 시간이 되면 입원실에서 모두 퇴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감동했던 것은 의사와 간호사의 친절함이었다.

나를 수술한 의사는 중년의 남성분이었는데, 항상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 주셨다. 회진 중에 수술 부위를 살피는데 심지어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진찰하셨다. 간호사분들의 친절함은 그 이상이었다. 손등에 주사를 놓을 때는 바늘을 찌르며 언제나 ‘고멘네’(미안해)라고 한 후 쿡 찔렀다. 진심으로 미안해함이 느껴져 내가 더 미안했다고 할까. 물론 일본의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다 친절한지는 체크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겪은 모든 병원은 동네의 치과, 소아과를 비롯해 종합병원까지도 지나치다 싶도록 친절했다.



물론 친절은 친절이고, 치료와 투병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독한 항암제로 인해 몸의 세포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 녹아내렸다. 아아. 낯선 외국땅에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꿈이라도 꾼 것처럼 그 모든 과정이 다 끝나고 나는 ‘살아있음’ 만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따스한 햇빛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 아이의 밝은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치료의 모든 과정이 끝나던 날, 집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궁금해하며 열어본 포장지 속 상자 안은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드를 열어보니 친구의 간결하고 따스한 메시지가.

- 잘 해냈어. 정말 애썼다!

고맙고 고마운 친구의 마음이 그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아픈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울컥하게 된다. 연령,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느끼는 건 아마도 겪어 봤기에 그 고통과 쓸쓸함을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겠지. 어찌 보면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즐거움과 행복, 쾌락 같은 것들을 추구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하루하루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너무 마이너스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파도처럼 다가오고 멀어지는 고난의 의미를 찾아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술을 앞둔 침대에 누워 깊은 후회를 했던 나지만, 수술을 마치고 난 후 회복하던 침대에서 크나큰 감사를 느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은 것 같았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순간을 후회보다는 감사로 채워 나가기.”

병원 침대에서 절실히 깨달았던 나의 고백은,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로도 가득 차 있다.

- 헬렌 켈러 (Helen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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