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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08. 2020

15. 시계는 살아있는가


"엄마, 시계는 살아있어?"



아이가 유치원에 막 다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바쁜 아침 아이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진지하게 그렇게 묻는다. 나는 분주한 마음에 그냥 떠오르는 대로 답해 버렸다. 아니, 시계는 살아있는 게 아니야. 그 속에 있는 배터리가 시곗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거지. 그렇게 후다닥 아이의 상상력을 꺾어 버린 그 아침이 지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자각이 비로소 들었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는 그 질문을 상기시키자 피식 웃고 만다. 아이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을지도 몰랐던 그 '시계'는 이미 하나의 사물, 생명 없는 사물의 하나로 전락한 지 오래인 것이다. 그래도 질문은 오래도록 내 기억의 주름에 남아있다. 그것은 질문의 요체가 '시계'이기 때문이고 시계라는 물건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질 때문이기도 하다. 추상의 개념을 구체화해 낸 사물이 있다면 아마도 '시계'가 유일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계'라는 장치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불의 발견 이후로 필시 가장 가치 있는 인류의 발명이 아니었을까.




휴대폰 디지털시계부터 손목에 차는 스마트 와치까지 진화하여 디지털이 시계 산업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보도를 접하고도 아직 시계라 하면 아날로그시계를 떠올리는 것은 필자가 디지털 원주민 세대가 아닌 이민자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아날로그' 시계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하 세계로 인도하는 토끼의 시계, 그리고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두 연인의 사이를 이어주는 시계와 시계줄일 것이다. 드라마라면 <모래시계>가 있을 것이고, 영화에서라면 개인적으로 주윤발, 종초홍이 출연한 80년대 말 홍콩 영화 <가을날의 동화>에서 주윤발의 전 재산과 맞바꾼 시계줄과 종초홍의 시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시대에 가장 친근한 시계는 매일 잠들 때 안고 자고 잠 깰 때 그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는 휴대폰 시계일 터. 휴대폰의 디지털시계는 쉬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보란 듯이 뛰어가는데, 벽에 걸어 둔 동그란 아날로그시계는 상관 말라는 듯 천천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여백이 있기 때문일까. 결국 도달하는 곳도, 현재 시간도 오차 범위 안에서 같은데 말이지. 모두들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결국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나름 시계들의 세계도 그런 것인가 보다.




하지만 절대적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서의 시계를 벗어나 개인들이 느끼는 시계를 일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을 이른바 '생체시계'라 하는 개념으로 부르는데, 흔히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생체 시계가 느려져 외부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생체시계가 빠른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자신이 자라는 속도와 실제 시간의 속도의 갭이 크기 때문에 느리게 간다고 느낀다는 것. 또한 강렬한 체험이 많이 쌓일수록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낀다는 분석도 있다. 철새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것, 연어가 산란 장소로 회귀하거나, 늙은 코끼리가 무덤을 찾아가는 것 또한 1년을 주기로 하는 생체 리듬에 의한 것이라고.




또한 모든 포유류는 평생 동안 심장이 뛰는 횟수가 약 15억 회 정도로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균 3년 정도를 사는 쥐의 심장도 15억 번 뛰고, 60여 년 사는 코끼리도 15억 번 뛴다는 이야기다. 똑같은 시간을 비교했을 때 코끼리의 심장은 평소 쥐보다 21.6배 정도 느리게 뛴다고 한다. 코끼리의 1분과 쥐의 1분, 코끼리의 24시간과 쥐의 24시간은 절대량으로는 같은 시간이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몸 안에 자신들만의 시계를 품고 있다.




그러니 몇 년 전 아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엄마인 내게 했던 그 질문,


"엄마, 시계는 살아있어?"


에 대한 답은 '응 살아있지. 누군가의 몸속에, 나의 몸속에 너의 몸속에 살아있단다.'하고 정정해주어야 함이 옳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의 잘못을 시인하며 다시 답을 고쳐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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