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가서 책을 읽으려는데, 약속 장소인 카페에서 주문을 하고 난 순간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행히 지갑은 누군가 가져가거나 어딘가에서 분실한 것이 아니고 집안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곧이어 나타난 지인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고 그를 보낸 뒤 그대로 앉아 아이가 마치는 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실감했다.
그리하여 집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자그만 몸집의 지갑을 깊이 생각했다. 역시 결핍이라는 것이 의미를 부여해 주는 동기가 된다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그것은 몇 해 전 생일날 남편을 졸라 받아 낸 나의 손 때가 묻은 접이식 지갑이다. 갈색의 테두리가 잘 테닝되어 보기 좋게 그을린 빛깔로, 지폐를 넣을 수 있는 공간과 동전을 넣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콤팩트 한 사이즈이다. 안에는 사회적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신분증과 다니고 있는 병원 카드와 신용카드, 은행 카드 및 각종 할인 카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지폐와 함께 영수증들 또한 나중에 정리할 요량으로 쑤셔 넣어져 같이 뒹굴고 있을 것이다.
대개 지갑은 가방과 달리 한 번 구입하면 지속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인생의 지갑 개수는 꼽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소싯적에는 소매치기를 묘하게도 자주 당했기에 몇 번 지갑을 새로 사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왜 소매치기를 자주 당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리바리의 극치였던 스스로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사람이 많은 전철에서 늘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 퍽이나 한심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비용을 치르고 난 뒤에야 겨우 이제서야 소매치기 같은 것으로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은 겪지 않게 되었다.
지갑이 한 사람의 인생에 드리우는 무게감이라든가 음영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무리 별 것 아니라 치부하려 애써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은 어쩌면 세상과 나라는 인류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최선의 혹은 최악의 사물인 것 인지도 모른다. 과거 쌀이나 물건으로 물물교환을 하던 시절을 제외하고 화폐의 가치가 숭상되는 모든 시대에서 지갑이 갖는 의미는 생존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주요 소지품을 넣어 다니는 목적을 넘어 이른바 '스타일'을 드러내는 역할도 지닌다. 브랜드에 따라 재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굳이 첨언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물건에는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인격이 담겨있다 한다. 자신의 사물을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보면 거기서 인격은 보이지 않는다. 낯선 장소에서 나의 사물이 어떤 낯선 이에게 발견될 때 인격 비스무리한 어떤 것이 읽히는 것이겠지. 누군가 낯선이가 낯선 장소에서 내 손 때가 더덕더덕 묻은 지갑을 잠시 집어 들게 되었을 때 그는 나의 무엇을 감지할 수 있을까. 나의 고민과 갈등? 가난과 부유함? 자존감과 열등감? 글쎄...... 다만 잠시라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오해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주섬주섬 소지품들을 체크하곤 한다.
허접한 인격이 낯선 눈에 의해 오해받을 일이 생기지 않아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워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지갑 없는 인간이 되어 한두 시간의 이 뻥 뚫린 자본의 틈새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있는 중에.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