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처럼 Nov 16. 2020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삶과 죽음 그리고 또 하나

읽기의 자율주행

​헝가리 출신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이름이 '아가사 크리스티'와 닮아서 (영어로는 더욱 닮았다) 종종 아가사 크리스티를 잘못 쓴 것으로 독자들이 오해한다고 하는데 책을 중간 정도 읽을 때까지도 여성 작가가 썼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이후 자신이 다니던 기숙학교의 역사 선생님과 결혼하여 헝가리를 벗어나 스위스로 건너갔다. 이후 그야말로 난민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시계공장에 다니며 틈틈이 글을 썼고 처음에는 조금도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세 개의 연작들이 주목을 받으며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젊은 시절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작품은 세 개의 이야기, 즉 <비밀노트, 1986>, <타인의 증거, 1988>, <50년간의 고독, 1991>으로 나뉘어 있다. 나눠져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마치 세 개의 뫼비우스의 띠가 얽혀있는 듯한, 읽다 보면 지금 내가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인가? 싶은 어지러운 구성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예를 들면 분명 국경을 넘었던 것은 아버지와 쌍둥이 중 한 명인데, 다른 편에서는 전혀 모르는 남자와 어린 소년이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국경을 넘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정도 읽다 보면 작가의 멱살을 붙잡고 대체 국경이란 게 있기는 한 거냐고 따져 묻고 싶게 된다) 그렇지만 그 세 개의 이야기는 연결된 - 시간의 흐름이건, 핏줄이건 간에 -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한 묶음으로 타이틀을 붙인 것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의 기억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의도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잘게 분해하고 해체해서 다시 이어 붙인 듯한 소설이다. 붙이다 보니 팔이 엉덩이에 붙어있고, 머리는 어깨 옆에 붙어있는 식이 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로테스크한 존재감으로 독특한 존재 양식이 되어버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의 작품이 되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이며, 마르크스주의 혁명과 그에 반대하는 혁명 같은,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힘없이 파괴되어야 했던 연약한 개인 개인의 삶을 너무도 잘 은유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두 소년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는 쌍둥이 형제로, 그 이름 또한 철자의 위치를 몇 개 바꾸어서 만들어져 있다. 루카스와 클라우스, 그들이 정말 쌍둥이 형제였는지 서로에게 존재하기라도 한 것인지 마지막 세 번째 소설까지 다 읽고 나면 독자는 판단할 수 없어진다. 억지로 헤어진 두 분신이 나중에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나가다가 둘 중 어느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불안해진다. 어쩌면 그 두 사람이 주인공의 두 자아였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미로 속에 갇힌 듯 혼란스러워진다. 세 가지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라면, 그중 하나는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변태성욕, 근친상간, 수간까지 등장하는 이 소설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도중에 속이 메스꺼워져서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들은 그 카오스와 같던 시기 인간의 참담함을 낱낱이 뒤집어 발가벗겨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생각. 그러한 '반도덕적인' 행위들을 진심을 다해 행하는 인물들. 그들이 악인들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의 행위로 맞게 된 비참을 끌어안고 살아가거나 죽는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상태만 주어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이 아니라 그 사이 물컹물컹한 지대에, 삶과 죽음의 교집합 정도 되는 위치에 '생존'이라는 것이 있구나. 그것을 생존이라고 표현하든 삶과 죽음의 중간계라고 표현하든 말이다. 삶과 생존과 죽음이라는 세 가지 진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