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처럼 Dec 20. 2020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거울이다

사유의 정원에서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청소하고 싶어 지는 동영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있어서 '들어가 보지 않았다'. 정말로 청소하고 싶어 질까 봐. 청소를 할 만큼의 체력 충전이 안되어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보통 불끈불끈 청소하고 정리하고 싶어 지는 욕구가 생성되는 순간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다녀왔을 때다. 초대한 댁에서도 손님이 오니 평소보다 더 신경 쓰셨을 테고 초대받은 쪽에서도 그 집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볼 여유는 없으니 좋은 것만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손님으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깔끔한 그 집과 내 집이 비교되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더 예민한 눈으로 집안 곳곳을 바라보며 치우게 되는 흐름이 된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게스트의 눈으로 내 집을 바라보게 되는 걸까? 요즘엔 유튜브에 워낙 '그런' 동영상이 많아서 깔끔하고 인테리어 훌륭한 집을 보면 나도 뭐라도 하나 더 치우고 이건 버려야지, 저건 저쪽에 둬야지...  이런저런 결심을 하게 된다.





무엇을 보게 되면 그것을 나 역시 하고 싶어 지는 체험. 매일 열심히 뛰는 사람을 보면 왠지 뛰고 싶고, 누가 걷기 예찬을 하며 걷는 모습을 보면 따라 걷게 된다. 뚝딱뚝딱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감자 깎는 것도 할 만하고 재미있어 보여 어느새 감자를 깎고 삶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 특히 요리의 경우 어떤 날은 하고 싶은 마음이 0.1도 싹트지 않아서 곤란해하다가, 그래도 아이는 먹여야겠기에 동영상을 꾸역꾸역 찾아보고 있으면 의욕 제로의 마음밭에 스멀스멀 요리의 새싹이 올라와 어느 순간 손에 물을 묻히며 채소들을 씻고 가스불을 켜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런 것은 대개 긍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위험한 것'은 하울(haul)이나 플렉스(flex) 영상을 볼 때다. 조회수가 나오니 그런 동영상을 자꾸 만들고 업로드들을 하는 거겠지만 제대로 꼼꼼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진 하울 영상을 보고 있으면 앗, 정말로 지금이 기회 아닐까? 당장 매장으로 달려가거나 사이트에 접속해야만 할 것 같은 의식이 밀려온다. 아차 하는 순간 벌써 구매 버튼은 눌러진 상태. 그저 누군가의 쇼핑 영상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 어느새 자신에게 전개되어 있던 경험들. 아, 위험하다.


책을 읽을 때도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좋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책이나 글을 읽을 때면 도저히 더 읽어나갈 수 없을 지경의 순간이 온다. 왜? 스스로 쓰고 싶어져서. 반응 과정이 다른 것들에 비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 문장들이 내게 끝없이 말을 걸어와 답을 풀어놓아야 할 것 같은 감정이 차오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쓴 글들을 읽어보면 어쩐지 그 감동했던 글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그것은 사실이다. 미묘한 지점들을 눈치채는 건 스스로 밖에 없겠지만.


이러한 반응을 이미 과학자들은 간파하여 전문용어로 명명해두었다. 이른바 '거울 뉴런'. 즉 인간에게는(원숭이나 조류 같은 동물들 역시도) 거울 뉴런 세포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의 세포에서는 실제로 그 행위를 할 때와 동일한 반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신생아가 말이나 행동을 학습해가는 것도 거울 뉴런의 작용이고, 오래 같이 산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비슷한 과정이라는 것. 거울 뉴런은 한 마디로 '모방' 뉴런이다.




청소 동영상을 보며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기 이전에 이미 나의 뇌는 청소를 하는 행위의 후련함의 감정을 뇌 안에서 모방하고 거울처럼 따라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긍정적인 행위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긍정적 행위가 복제되는 경우 거울 뉴런의 반응에 열렬히 환영해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 기부를 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지갑도 열게 되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록이나 동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덜 먹고 몸을 움직이게 되는 등 아름다운 연쇄 반응은 바람직하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아이들은 때로 친구와 줌을 켜놓은 채 말없이 공부하는 공부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저 친구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공부하는 뇌가 자극받아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울 뉴런의 긍정적 활용인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쪽으로도 이 거울 뉴런은 어김없이 발현된다. 우울해하는 친구를 한참 달래다 돌아서면 스스로의 우울감이 폭풍처럼 밀려와 어찌할 바 몰랐던 우울의 전염 경험도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폭력이나 선정적인 장면들에 노출 빈도가 높은 어린이나 청소년의 거울 뉴런은 어쩌란 말인가. 폭력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의 뇌에 작용하고 있는 그 폭력적 쾌감의 거울 뉴런들은 이후 어떻게 처리된단 말인가.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무엇인가의 모방이고, 그것의 모방이 지금의 당신이고 나일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 나의 이 생각은 나의 생각일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리액션이 아닐까? 보는 것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도 지배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어떠한 방향으로 인도해간다. 어느 방향으로 인도해갈지는 그 끝에 가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연말에 즈음하여 며칠간 '청소하고 싶어 지는 동영상'을 연달아 봐 둬야 할 것 같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새해를 맞으려면! 아참, 오늘의 저하된 요리 의욕의 불을 당길 요리 동영상 몇 개도 '나중에 볼 동영상'에 저장해두었다. 유튜브 이용자 수 19억 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비 유튜버의 유튜브 의존증에 대한 커밍아웃이 되어버렸나. 아니, 유튜브 의존증이 아닌 ‘거울 뉴런 의존증’ 일지도.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와 코뿔소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