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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02. 2021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왜때문일까?

읽기의 자율주행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타이틀 옆에는 약간 작은 글씨로 '우리 함께 시시한 행복을 꿈꾸자'라고 쓰여있다. 저자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세를 탄 김영민이라는 분인데, 모 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라고 한다.


여태 읽은 책 중 제목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기억나는 것)은 두 권. 하나는 이 책이고, 또 하나는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이다. 거의 20여 년 전에 읽었던 <춤추는 죽음>은 '메멘토 모리'를 테마로 한 미학을 다룬 책이었고 상당히 감동했고 고무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의 저자가 최근 이상하고 오묘한 나락의 길로 빠져버린 듯하여 기분이 영 씁쓸하지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위키백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이긴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다. 책의 초반부에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왜 아침이고 왜 죽음인가? 에도시대 일본의 한 무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무사로서 합당한 행동을 할 수 있다,라고.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죽음을 말할 수 있다는 다른 이의 말도 덧붙이고 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죽음을 떠올림으로인해 삶의 유한함을 매일 깨닫고 시시한 것들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런 메시지로 읽혔다.




'시시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시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너무 평범하고 자랑거리가 없다'이다. 또 다른 사전에는 '신통한 데가 없고 하찮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시하다는 말을 떠올리면 결코 시시하지 않은 한 목사님이 떠오른다. 그분은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그렇게 결심하셨다고 한다. '시시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분은 '시시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시시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예외 없는 법칙처럼, 시시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하면 시시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시시한 행복을 발견해야겠다고 결심하면 시시하지 않은 행복을 반드시 찾아내게 된다. 아이러니 혹은 역설이 이렇게 귀엽게 뒤통수를 치며 반가이 손님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사실 삶에 대한 엄청난 애착으로 들린다. 이것도 어떤 종류의 경험칙이다. 대개 '시시한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시시함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 수순이 뒤따른다. 인생은 역설의 아이러니고 아이러니의 역설이지 뭔가.



중간중간 영화평론 글이 지루하게 이어져 그 부분은 설렁설렁 설렁탕처럼 읽었다. 왜 영화에 평론이 필요하단 말인가. 왜 음악에 평론이 필요하단 말인가. 왜, 왜, 왜. 저자 본인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상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심사위원이었던 박완서 선생에게 칭찬받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그렇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반가이 뒤통수를 치는' 문장들이 많은 글이었다.


- 더러움을 찾아 떠나는 무심한 로봇 청소기처럼 앞으로 나아갈 때다.

-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다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마주치는 개들에게 속삭인다. 네가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사실 좀 그렇단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화 '하나와 앨리스')

- 인간이 평생 다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살아남는 게 직업이 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적잖은 사람이 그런 지경에 몰리고 있다. 이때 정치가 필요하다.



2021년 새해 벽두에 읽은 이 책에서 가장 뒤통수를 치는 문장은 이것이었다. 저자의 말은 아니고 옮겨온 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



아무래도 마이크 타이슨을 올해의 계획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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