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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19. 2021

보르헤스의 말 - 세상 모든 언어는 의미에 이르는 길

읽기의 자율주행

[보르헤스의 말]을 다 읽는 데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말'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리라는 착각을 했나 보다. 하지만 질문하는 자도 답하는 자도 밑도 끝도 없는 꿈을 꾸듯 질문과 답을 이어가고 있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는 말이 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던 걸까. "문학은 글로 쓰인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구어적이라는 것을, 나는 거듭 느끼곤 해요."



그가 눈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든다. 거울 안에 자신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사랑에 빠진 여인이 예쁜지 예쁘지 않은지 친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것. 시간의 경사를 그저 미끄러져 내려가도록 놓아두는 것. 그것을 부르는 한 마디의 말은, 고독.




난 고독을 반드시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략) 어쨌든 시간은 미끄러져 내려가니까요. 그건 완만한 경사 같은 거잖아요. 그렇게 살아가도록 나 자신을 그냥 놓아둬요. 눈이 멀지 않았을 땐 늘 여러 가지 것들로 내 시간을 채워야 했지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나 자신을 그냥 놓아둔답니다.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그의 문학적 혹은 삶의 키워드들이라면 거울, 미로, 도서관, 책, 시와 시인들, 시간, 과거,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죽음.....이었다. 보르헤스가 던지는 키워드를 통해 그의 내면 깊이 거하는 몇몇의 생각들을 옮겨본다.




1. 책과 도서관


"책을 읽는 것은 경험이에요.
사랑에 빠지는 경험, 길을 걷는 경험 같은 거지요.
독서는 매우 현실적인 경험이에요."



"인간이 만들어온 도구들은 단순히 손을 연장한 것일 뿐이에요. 칼, 쟁기가 그렇죠.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눈을 연장한 것이고요.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중략) 책은 하나의 물건인데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아요. 책은 독자가 오기 전까지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죠."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2. 미로

Q.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로와 이상한 패턴들은 예술적 기교로서 나오는 것인가요, 아니면 어떤 생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가요?


A. 나는 그것들을 근본적인 징후, 근본적인 상징으로 여겨요. 내가 그것들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것들이 내게 주어진 것이지요. 그것들이 내 마음 상태에 딱 들어맞는 상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내가 그것들에 집착한 거예요.

나는 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요. 그러니 미로는 적합한 상징이죠. 나는 그것들을 기교로 생각하지 않아요. 운명의 일부, 내가 느끼는 방식의 일부인 거예요.



3. 시


시를 쓰는  아주 신비로운 일이에요. 시인은 자기가 쓰는 것에 쓸데없는 참견을 하면  돼요. 자기 글에 끼어들지 않아야 합니다. 글이 스스로 나아가게 해야 해요.


성령이나 뮤즈, 또는 아름답지 못한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잠재의식이 스스로 나아가게 해야 하고, 그래야 우리는 시를 짓게  거예요.”



시에 대한 그의 이 말들은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위대한) 시는 그렇게 쓰이는 것이었던 것이다. 섣불리 '시'라고 부르며 자기 글에 계속 끼어드는 듯한 많은 시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누에고치가 실크를 꽁무니로 자아내듯 시는 스스로 나아가며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 또한.



그 외에도 반짝이는 많은 말들이 넘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여기 기록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가 지은 시의 한 부분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자신에 대한 시다. 눈먼 자신에 대한.



내가 잃은 것은 고작
쓸모없는 겉가죽뿐.
 위안이 가득 밀려온다.
밀턴이 느꼈던 위안이다.
편지와 장미에 의지해야지.
나는 생각한다.
시 [눈먼 사람] 중에서 




그는 무신론자였고, 죽음만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사람이다. 죽음은 곧 '無'라는 믿음 말이다. (망각보다, 잊히는 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 보르헤스) 필자는 무신론자도 아니며 죽음이 nothing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 이미 지상에는 없지만 붙잡아 문자화 된 그의 말이 아닌 그의 꿈결 같은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언어의 조합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전히 세계의 많은 문학인들이 그의 글과 생각에서 영감을 끌어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세상 모든 언어가 의미에 이르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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