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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Jan 09. 2017

작가를 위한 키보드는 없는가?

그랬다. 내가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5시간 이상 글을 쓰는게 어려웠기 때문에 키보드에 대해 고민해볼 생각이라곤 없었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문장을 하나라도 건지는게 너무 힘들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냥 문장 말고 잘쓴 문장...허접한 문장따윈 하루에 열장도 채울 만큼 적을 수 있다. 잘 벼려진 한문장, 심지어 한 단어, 한 획의 무게가 산을 지고 다니는 듯이 무겁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이라면 내 숨과도 바꿀 것만 같다. 길을 가다가 오래전 떨어져 나간 내 영혼의 한 부분을 줍기라도 한 듯이 즐겁다. 진짜 '작가'란 그런 것이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그의 내면은 진리를 갈구하는 종교인에 더 가깝다.


하지만 제대로 된 예술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작가가 되고 나서는 하루에 열시간을 써도 -덜 피곤했다. 글의 무게나 깊이가 달랐다. 하지만 곧 다시 피곤해졌다. 이제 글쓰기는 정신활동보다는 노동에 조금은 더 가까워졌다.


그 당시에 나에겐 mk220 - 로지텍 무선마우스 키보드 셋트가 있었다.


나는 로지텍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매우 사랑한다.

내가 기업을 위한 스토리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로지텍 무선 키보드를 미친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무선 키보드의 단점이란, 가끔 자기가 눌렸다는 사실을 까먹는다는 데 있다.

한번 더 눌러보면 아~! 생각났다는 듯이 이제야 제 일을 한다. 내건 로지텍 무선 중에 가장 싼 보급형이었다. 가끔 아무 이유없이 키가 안눌리는 일은 한달에 한 번 정도 있었다.

아래 사진을 보라~ 나는 중고컴을 13만원 주고 사면서, 만원을 더 얹어주고서는 이걸 컴팔이 사장님에게서 얻었다.


감사한 일산 컴팔이 사장님... 내 컴을 팔고 얼마 안있어 그는 폐업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조립해준 컴으로 돈을 꽤나 벌었다. 물론 누적으론 그렇다는 것이고, 사실 매달 먹고살기 근근했다. 나는 밥낮 없이 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얼마나 많이 두드렸는지 아마 일년동안 건전지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를 교체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거의 불편을 못 느낄 정도로 끊김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는 지금처럼 바쁘지 않아서..뭐 키가 한번쯤 작동하지 않는다고해서 신경질이 날 정도는 아니였다.


그 이후에 돈을 좀 벌자 나는 노트북을 샀는데 이게 작가에게는 아주 고약한 키보드 배열을 가지고 있었다. 휴대성만 생각해서 너무 작은 노트북을 산게 화근이었다.

shift 키가 특히 고약했는데 사실 나는 그리 능숙하게 타자를 치는 편은 아니다.

한 300타도 못나올 것이다. (이런 점을 본다면 자주 한다고 해서 느는 것은 아니다. 글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자수는 대학생 때 이래 늘 한결같다.)


그래서 나는 노트북용을 핑계삼아 좋은 키보드에 처음으로 욕심을 내었다. 그때 그래 매일 키보드를 치는데 이정도 가격은 적당하지 하고 정한 건 4~6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작가부심에 걸맞게 매우 뽀대-저속어주의-가 나는 키보드여만 했다. 그니까 굳이 사무실 어딜 가도 먼지투성이 키보드 마우스쯤은 없는 곳이 없는 이 나라에서, 과연 작가는 어떤 키보드를 써야하는가가 고민이 되었다는 말이다.


말은 근사했지 사실은 그냥 자랑하고 싶은 수준의 키보드를 사고 싶었던 거다. 일종의 작은 사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놀라운 편리를 주었던 로지텍을 버리고 MS키보드를 선택했다. 그것은 사진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엄청 특이하게 생겼다. 그리고 게임용 키보드가 아니다. 사무용이다.

곡선으로 생겼다. 그래서 산거다. 왜 저런 키보드를 쓰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제가 작가입니다.'라고 대답하려고 그랬다. 물론 한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다.

내 얘길 너무 길게해서 결론만 쓰겠다.

그 이후 나는 그 MS키보드를 악덕 사장에게 빼았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일반 키보드를 섰는데 하등의 불편을 느낀적이 있느냐면 없다.

왜냐면 작가를 위한 키보드는 어차피 없기 때문이고. 뭘 쓰든 키보드는 불편하다.


지금 나는 덱헤슘이라는 키보드를 쓰고 있다.

아~

이거다. 그렇다 작가를 위한 키보드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엄청 비싸다.

원래 나는 보다 저렴한 아이락스 펜터그래프 키보드를 사려고 했다. 싸고 정확하게 눌려지고, 빠르게 칠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은 로지텍에서 제일 좋은 키보드를 샀다가 고장 나서 실의에 빠진 후 갑자기 내가 감히 꿈꾸기 힘든 고가의 키보드를 지르고 말았다.


내가 청축 갈축 적축이 무슨 뜻인지 알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덕헤슘'이라니 이 무슨 외계어인가?


그치만 너무 불편한 나는 운명에 이끌렸다. 이제와서 자위하자면 그만한 값은 한다. 키보드 치는게 처음으로 재미가 있다.

나는 착한 일산 - 또 일산이구나 - 분에게 헐값이 이 키보드를 샀다. 속된 말로 중고나라에서 샀다. 이건 게임용이 아니다. 타이핑을 최선으로 제공할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뭐 세상에 더 좋은 키보드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런거에 내가 관심을 가질 겨를이 있겠는가?

수많은 무접점 키보드가 혹은 청축 기계식 키보드가 더 좋을 수도 있고, 커세어 적축이 그리 좋다는데 나는 오로지 중고나라의 간택만을 보고 샀다.


내가 키보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키보드가 나를 선택한 것이다. 중고가 아니라면 족히 19만원을 줘야 살 수 있는 키보드를 가난한 내가 쓸수 있으랴~~

결론은 덕헤슘이다.


작가들이여 돈 벌어서 덕헤슘을 사라. 물론 당신의 글의 수준과 키보드의 편리함은 무관하다. 늘 작가란 졸라 힘든 존재다. 우주에서 누구도 도와줄 수가 없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그치만 deck 키보드는 쪼~~~금 위안을 준다. 내 말을 믿어라...

 

덕헤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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