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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Sep 22. 2016

존 메이슨 (1)

<5분 소설> 존 메이슨  -1/3

'강의 마치는데로 전화 줘~'


라는 문자에 답을 못한게 네 시간째다. 신영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화난 목소리를 염려한 나머지 조심스럽게 수화가를 귀에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신영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밝았다.


-헬로우! 리우에서 3년차를 축하해.


신영은 내가 브라질에 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다. K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잠깐 기웃거렸지만 헬조선이 나를 길들이가 전에 그곳을 빠져 나왔다. 당시 이과출신의 비애 따위 글들이 온라인에 떠돌던 시기지만 이젠 문과들도 취업이 그리 안된다지?


외국어에 서툰 내가 한국을 떠나 브라질에 엔지니어로 정착할 결심을 하게 된건 신영의 도움이 적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가장 큰 건 어딜가도 한국에서보다 적게 일하고 한국에서보다 우대받을 자신이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였다. 그 자신감은 정말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금세 증명되었지만, 자동화공장 설계를 배우고 공장 감독관을 거쳐 지금은 최고의 컨설턴트로 자리 매김한 건 분명 신영의 조언덕이었고. 혹시나 하나 더 덕본게 있다면 한국인만 해낸다는 연이은 밤샘 연구덕이었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연구하지 않는 신입들에게 꼰대 노릇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를 제외하면 나는 완벽히 브라질에서의 삶에 적응했다.


-철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신영은 왠지 한국어에 능통해야 마땅할 듯한 이름이다. 하지만 신영은 교포3세로 마치 독일어를 하듯이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영리하게도 한국어에서 가장 어려운 문법을 피하고도 의사소통을 거뜬히 하는 법을 찾았다. 그것은 어눌한 발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과 한국어 문법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조사와 어미를 과감히 생략하는 것 등이다. 아마도 다국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도 다중국적자로 살 수 있는 노하우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브라질에 2,3년 먼저 왔을 뿐인 이방인이면서도 내가 만나본 교포중에서 가장 브라질 산업동향에 밝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임금이 싼 나라를 찾는 대신 공장자동화 컨설턴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진입을 권유한 것도 그녀였다. 과연 브라질 자본가들도 같은 니즈(needs)를 가지게 되었다. 저렴한 공장 유지비용과 노조분쟁 없는 경영이다.


-신영, 왠지 나쁜 소식을 먼저 듣고 싶네. 이번엔 조금 나쁜 소식과 훨씬 좋은 소식이길 바래.

-Me, too.나도 그래. 나쁜 소식을 먼저 말할께. 저번에 철수가 컨설팅한 베네수엘라 산타가모 공장이 기존 사업규모를 고수하기로 결정했어. 그들은 원래의 경영방식을 Keep going한다.

-신영 오케이! 어느정돈 예상했던 바야. 베네수엘라는 아직 자동화 설비 도입비용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건 알고 시도한 거니깐. 결국 비행기값만 날라갔군.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여서 괜찮아. 신영 덕분에 베네수엘라 와인도 실컷 마시고.

-그래서 더더욱 최고의 컨설턴트인 철수에게 부탁한건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I'm sorry. 대신 이번엔 확실한 컨설팅 의뢰를 delibery하겠다.

-와우~! 신영이 확실하다면 얼마 정도 되는거야?

Anthony Francis 「machine in an abandoned factory」


나는 들떠서 물었다. 하지만 신영의 대답은 의외였다.


-계약규모는 작다. 하지만 자문 수수료는 확실하다. 이미 선금으로 2만불(US달러)로 입금했다.

-그정도 선금을 낼 정도면 어느정도 규모지?

-리우 외곽에 포도 가공 공장이다. 이미 그곳은 자동화되어 있어 철수. 단지 그들의 설비는 늙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자동화 이전에 오래된 자동화 공장이다.

-옛날 버전 자동화 공장이라면 나보다는 델라스나 마르코가 적임자 아냐?

-아니? 그들은 최고의 그리고 최신 기술에 능통한 컨설턴트를 원했다. 더 좋은 것은 아무런 완성 조건 없다. 심지어 그들은 오직 자문만을 원한다. 철수는 빈손으로 그곳에 가도 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건에 대한 보상으로 철수의 비행기 티켓은 우리가 지급한다. 철수는 컨설팅을 마치고 리우의 와인을 즐겨도 좋다.

-오우!! 베리베리 땡스 신영. 사실 베네수엘라 건은 잊어도 좋은데, 굳이 보상을 해준다면 사양하진 않을께. 일은 언제부터지?

-철수, 다음 강의가 끝나는 4월 7일 이후라고 통보했다. 철수가 직접 contact해서 일정을 수정해도 좋다. 철수의 이메일에 세부사항을 확인하라.


신영의 놀라운 점은 부드럽고도 확고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비지니스를 하는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나쁜 통고를 하면서도 절대 기분이 상하지 않는 톤과 억약을 구사했다. 그리고 통고 내용이 좋은 것일 때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나는 이메일과 첨부파일을 확인했다. 대충 감잡아보건데 리우의 포도공장은 3일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렇다면 4월 10일 강의를 뒤로 미루기만 하면 완벽한 일정이었다. 그러면 3~4일만에 컨설팅을 완료하고, 입금을 확인한뒤에 리우의 와인을 하루쯤 실컷 즐길 수 있는 시간 여력이 남는다. 와인 뿐일까? 다른 어떤 계획이라도 한번쯤 기대해봄직하다. 이번 건은 아무 cost 없이 3만달러가 생기는 일이다. 간혹 피차 거래내역을 원지 않는 기업도 있기 때문에 Tax Free로 수임료가 입금되는 건도 많다. 이번건이 그런 경우라면 리우에 와인을 모두 동내도 좋으리라. 나는 기대에 부풀어 다이어리에 일정을 체크했다.





<간만에 시작된 1분소설입니다. 이번엔 기술과 인간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분 소설치고는 길어요. 존메이슨은 한참 뒤에 등장합니다.^^>


ps. Alexandra the Twinkling님 즐감하세요^^ 단지 다음 연재가 언제 될지는 모른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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