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게 영화이든, 소설이든, 노랫말이든, 근거 없는 낭설이나 뒷다마라도 그 이야기가 흥행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물론 흥행하는 이야기가 다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숨겨진 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를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심청전은 해상무역의 험난함을 춘향전은 탐관오리의 포악함이라는 고통을 숨기고 있다. 두 이야기가 해피엔딩인 이유는 실제로는 탐관오리와 해상무역이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생명을 앗아갔다는 뜻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더욱 심오한데,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우물과 구두는 모두 죽음을 의미한다. 12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12시는 사자(死)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즉 신데렐라의 표면적인 해피엔딩과 달리 역시 실제 신데렐라의 주인공은 죽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벗어 낫을 뿐 살아생전에는 고통 속에서 살다갔음을 뜻한다.
신데렐라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개구리 물고기 등이 나오는 데 모두 영혼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디즈니 판 신데렐라는 이를 감추기 위해 개구리와 물고기 등을 금발 요정으로 둔갑시켰다.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다.
20세기 가장 감동적인 영화로 꼽히는 쇼생크 탈출은 '자유'를 뜻한다.
터미네이터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의 심리'를 이면에 담고 있다. 터미네이터 같은 경우 액션영화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런 공포를 아주 잘 표현해낸 컴퓨터 그래픽 기술 덕분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더 깊은 주제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미네이터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위기감'만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전부라면 그런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는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공포를 영화는 숨기고 있는데 그것은 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지성인들의 불안감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함부로 꺼내기 힘든 속마음을 영화는 반영한다. 그 속마음은 현대가 이룩한 과학기술의 토대가 되는 합리주의와 지성이 과연 바른 것인가 하는 자기부정이다.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인간은 지구 상에 불필요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기계인간이 인간을 몰살하게 된 영화속 이유이다.
영화는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기계와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인간의 대결을 통해 인류가 추구하는 합리적 사고가 과연 올바른 길인지를 여러 차례 되묻는다.
따라서 영화속에서 터미네이터로 출연하는 아널드 슈왈처 제네거가 존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배우게 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 된다. 특히 마지막에 존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젠 우는 이유를 알았다'고 하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장면중 하나이지만 액션영화라는 특성상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외에 매트릭스는 21세기에 인터넷과 PC를 통해 열린 사이버 세상과 가상현실에 대한 위기감을 담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뜻한다.
다크나이트는 선과 악에 대한 조롱이 주제이다. 그런 주제로 보면 다크나이트의 실제 주인공은 조커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의 표면적 모습과 달리 조커는 악역이 아니다. 조커는 스스로의 의지로 선과 악을 넘나들면서, 그 영역을 지키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을 조롱하는 인물이다. 조커가 고담시의 악당들을 다 죽여버리고 다시 선한 사람들도 다 죽이려 시도하는 이유는 선과 악이라는 기준이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는 결국 베트맨이 조커를 이기지만 숨겨진 주제에 따르면 조커의 조롱을 이겨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베트맨조차도 조커에게 당한 정신적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베트맨이 지키려는 선이라는 것도 결국 허구이기 때문이다.
모든 히트한 이야기는 숨겨진 주제가 대중의 무의식 속에서 동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것이다.
얼마전 아카데미상을 휩쓴 라라랜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라는 숨은 주제를 감추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면 감동적이고도 슬픈 사랑이야기와 두 젊은 남녀의 성장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영화의 모든 장면 속에 감추고 있다. ost주제가에 나온 '별'은 시간을 상징한다.
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십 년 동안 히트 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다. 바로... 빨갱이 타령이다.
우리는 처음엔 진짜로 빨갱이가 대한민국에 수십만이 판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국정원이 체포한 간첩은 거의 한 자릿수에 가깝다. 수십만 내지 수백만의 빨갱이가 대한민국에 득실대는데 국정원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김대중 정부 때는 빨갱이 정부라서 그랬다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되어서도 빨갱이 체포 수만큼은 전혀 올라가지 않고 있다.
우리는 거의 수십 년 동안 몰랐던 빨갱이의 정체를 비로소 박근혜가 탄핵당하는 시점에 와서야 눈치를 챈 것이다.
그 빨갱이의 정체는 바로... "변화"이다. 그로 인해 관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빨갱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제 알 수 있다.
노인들이 두려워하는 빨갱이는 현실에서는 북한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남한에 내려와 숨어 있다고 노인들과 일부 보수층은 믿는 것일까?
정말 빨갱이가 그렇게 많다면 국정원이 적어도 해마다 수십, 수백 명은 잡아줘야 하는 게 아닐까?
간첩신고만 해도 해마다 수억씩 버는 것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북한이 보낸 남파 간첩은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보수층이 믿는 것만큼 많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뇌는 진짜 이유는 빨갱이는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나라를 점령할 듯이 밀려오는 어떤 불안이다 공포다. 무의식에 박힌 상징이다.
그리고 그 실체를 박근혜를 탄핵하는 순간에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노인들을 통해 그 상징의 뜻을 알아채고야 말았다.
아~ 빨갱이는 노인들과 보수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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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의 실체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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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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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풀이하면 빨갱이 이야기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히트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수층은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늘 한결같기를 바란다. 발전도 경제 성장도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가장 좋았던 시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절은 변했고 노인들은 꼰대가 되었으며, 보수층은 사회 지도층이라기보다는 그저 빌딩주 정도가 되었다. 보수층을 사회의 리더로 믿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그저 과거의 영화에 힘입어 돈 좀 많이 번 사람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그 돈마저 없다면 한때 잘 나갔던 사람 정도에 그칠 것이다.
보수층은 과거의 태양이 그립다. 자신을 사회 낙오자로 몰고 가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빠른 변화속도이다.
이것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대한민국에 수십만 에서 수백만의 빨갱이가 있다는 유언비어는 근거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아직도 그 빨갱이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수정당의 지도자를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과거로 되롤려줄 영도자이다.
한때 자신들이 가장 화려했던 그 시절로 말이다.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야 확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