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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리 Apr 12. 2016

바람은 알 것이다


바람은 알 것이다


형체가 없는 차가운 공기 중에

입가로부터 하얗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작은 구름


한 겨울 극한 추위는

한 여름 경쾌했던 물 줄기의 흐름마저

겨울의 시간 앞에선 멈추어 버린다

하지만, 바람만큼은 멈추지 못한다



바람은 알 것이다


따뜻한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알려야 한다는 것을


햇살이 푸르른 숲을 비추는 봄날에

겨우내 낮게 움추렸던 민들레가

동그랗고 하이얀 실공을 만들며

단 하나의 유일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민들레는 그 공 속에  깃털처럼 가벼운

씨앗들을 가득 걸어 놓고선

휴식을 취한다



바람은 알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런 물이

잘 스며들 수 있는 곳으로

민들레 씨앗을 배달할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을


한 여름 동안 뜨거운 태양의 빛 줄기와

간간히 열기를 식혀주고

마른 샘을 채우는 빗물로

들판의 곡식은 황금 옷으로 갈아입고

숨죽여 세상에 촘촘하게

날을 세웠던 밤나무는

이제서야 긴 숨을 쉬려고

밤알을 부끄러운 듯 내민다



바람은 알 것이다


여름내내 땀 흘리고

무더위를 이겨내는 인고의 끝에

맛있는 열매를 맺은

곡식과 밤나무에게

다음 해를 준비할

선선한 공기와 휴식의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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