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이 시간의 고독한 명상이라는 철학을 응축해 두었던 거북 수족관의 자리는, 소문대로 AI와 관련된 교양서적 코너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예전에는 물결의 은은한 반짝임과 거북이의 고요한 시간의 호흡이 어른거리던 곳이었다.
AI 인사이트 존의 오픈을 축하하듯,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서점의 경영진과 마케팅팀 직원들이 모여 서 있었다. 리안은 마치 투명 인간처럼, 그 모임의 가장자리에 천천히 합류했다. 그들은 새로 설치된 서가를 둘러보며 흥분과 기대가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구역 중앙 상단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LED 채널 간판이 'AI 인사이트 존'이라는 명패를 달고 당당히 주인 행세를 했다. 간판 이름은 ‘AI 인사이트 존’. 그 아래에는 AI가 추천한 책들이 정밀한 알고리즘의 손길로 배열된 듯, 각도 하나 흐트러짐 없이 세워져 있었다. 책 표지가 빛을 받아 유리처럼 반짝였고, 책등의 숫자와 폰트들은 일종의 코드처럼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리안의 세계가 머물던 느림의 수족관이 아니었다. 물의 흔적이 완전히 증발한 자리, 거기엔 이제 AI의 효율이 맥동하는 서점의 차가운 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리안은 자신이 낡고 초라한 유물처럼 느껴졌다.
중앙의 도서 진열대 바로 옆에는 미켈란젤로의《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가로형 포스터 스탠드가 놓였다. 아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의 형상을 한 인공지능 로봇이 왼팔을 뻗어 손가락을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지성이 인간에서 AI로 옮겨갔음을 선언하는 듯 한 노골적인 상징이었다.
천여 권을 겨우 읽은 자신에 비하면 이미 수십만 권을 섭렵하고 날로 지능화되고 있는 AI 앞에서, 리안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특히 최신 트렌드를 눈 깜빡할 사이에 빠르게 포착해서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을 추천하는 AI의 생산성은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다.
리안은 그 순간 자신이 수족관에 갇혀버린 거북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깊고 넓은 사유의 바다에 있어야 할 자신이, 투명한 유리벽에 갇혀 원래의 그 안에서만 맴돌며 AI의 오더에 맞춰 기계적인 행위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리안이 북큐레이터로서 가졌던 직업적 신념과 자부심은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이제 그 신념은 점점 희붐한 안개처럼 부유하다가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제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주체는 인간에서 AI로 완전히 바뀌어 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