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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릔이 Mar 22. 2024

술과 스타트업, 그리고 나

오늘도 한잔 꺾으러 갑니다.


저에게 '술'은 오랫동안 함께해 온 고향 친구 같은 느낌의 존재였습니다. 가끔 생각나고 또 오랜만에 보면 반갑지만 자주 하기에는 현재의 삶이 바빠 중요한 일이 생겨 겨우 일 년에 몇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에도 큰 사건사고 없이 건전한 음주 문화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애들과 같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 느낌으로 술을 대하고는 합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니 이 '술'이라는 친구는 회사 외부와 내부 그리고 나 자신에게 까지 3가지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1) 외부 - 접대 

국내외를 떠나 모든 곳에서 술은 비즈니스를 하는데 좋은 윤활유 역할을 하고는 합니다. 적당히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 수 있으며 회의 중에서 다 하지 못했던 숨겨진 뒷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갑자기 유흥 문화의 선봉장이 되어 본디 저녁 술자리의 목적과 맞지 않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무엇보다 해외 출장 나와 신이 난 사람들은 은근히 유흥이 동반된 곳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러한 의중을 파악하여 미래의 고객님을 만족시키는 온도를 맞추기 너무 어렵습니다.  

1차 술자리 이후 간단히 맥주 한잔 더 할까요? 아니면 좋은 곳으로 가시겠어요?라는 질문을 하면 본인 입으로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 대고 있으면 십중팔구 유흥을 더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밤문화를 활용하여 고객을 접대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고 건전한 방법인가?라는 의구심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괴롭힐 듯합니다. 


2) 내부 - 조직 관리

사실 조직 관리를 위해 저녁회식을 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라고 생각하기에는 효과는 너무나도 좋습니다. 적당히 회식날짜와 장소를 미리 공지하고 1차 자리에서 맛난 음식 먹으면서 한두 잔 반주를 곁들인 후 자리를 빠르게 끝내면 모두가 행복한 회식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는 아직까지도 저녁 회식에서 단합된 모습으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라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직원들은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과 다르게 진심으로 저녁회식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내 앞에서만 좋은 척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내가 정말 아재가 되었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술이 좋아하는 사람만 남아 있는 2차 자리에서는 조금 더 진솔한 얘기가 오갈 때도 많으며, 겉으로는 좋아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옛말에 '불가근불가원'이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도록 해야 한다 라는 고사성어가 있듯 매번 똑같은 멤버와 2차 술자리를 갖다 보면 결국 몰라도 되는 얘기들까지 알게 되면서 서로 곤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 예로 착실하게 일하는 신입 직원 한 명이 있었는데, 2차 자리에서 술기운에 자신은 조만간 유학 갈 계획이 있다고 얘기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영자 입장으로 우리 회사에 오랫동안 함께할 계획이 없는 직원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해고를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변화를 느꼈는지 머지않아 스스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3) 나 자신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소주를 반주 삼아 하루에 1~2병씩 마시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런 모습들을 너무나 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와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어렵사리 일을 마친 후 숙소로 퇴근하게 되면 심한 고독함이 뒤늦게 몰려오며, 특히 가족들이 함께 지내지 않는 경우라면 이러한 상실감은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일 끝나고 나면 으레 맥주 1~2 캔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식사가 길어지는 경우 역시 소주 1~2병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반주는 결국 알코올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하지만 엑싯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듯합니다.


글을 써놓고 보니 술에 관련해서는 좋은 얘기보다는 나쁜 얘기가 더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며, 저도 새해에는 반주를 줄이고자 맥주를 완전히 끊고 차를 마셔보고는 있습니다. 지금 먹고 마시는 것들이 5년 뒤 나의 건강을 결정한 다는 말이 있듯이 24년 새해에는 술을 한번 끊어.. 아니 줄여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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