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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릔이 Mar 24. 2024

공무원들과 은밀한 꽌시 문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대표님 일 잘되면 저 잊으시면 안 돼요!!


농담반 진담반이 섞여있는 이 말에는 내 도움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이번 도움에서는 그 대가를 싸게 치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공무원들과 협업하여 일을 진행하다 보면 그 대가를 요청하기도 지불하기도 어려울 만큼 투명해진 사회를 느끼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샌드 박스를 신청하는 경우도 많고 법이나 시행령에 대한 해석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으며, 협업이라는 이름 아래 스타트업과 공무원들이 함께 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해외에서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한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생기게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애초 파견 목적이 공무 수행이기 때문에 스타트업 자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 해당국가에 진행하려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데, 지원 시기나 가능성만 알 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재정적으로나 마케팅 수단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한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이러한 지원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상부상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출한 국가에서도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주 미약하나마 현지 국가의 공무원들과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선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높은 확률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사적인 요구, 즉 일명 Under Table Money라고 부르는 뒷돈을 요구하게 되며, 선진국의 경우는 그러한 요구가 노골적이지 않을 뿐이지 많은 경우 장애물로 인식이 되며,  제가 만난 공무원 중에 어떤 분은 심지어 이런 말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한마디로 뒷돈을 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반적인 일이라고 인식하게 되며,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당장 국경만 넘어가려고 해도 대부분의 국경심사대에서는 뒷돈을 주지 않으면 이상하리만큼 시간이 소요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공무원들과 관계를 통하여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가장 큰 권한을 지닌 공무원을 알아내고 사적인 자리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주변 업체를 통해서 수소문하거나 파견된 우리나라 공무원을 통해 찾아보는 경우도 많으며, 이런 뒷돈만 전문적으로 로비해 주는 대행사를 찾아서 컨택포인트를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렵사리 만남을 성사시키면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공관이 아닌 조용한 만남을 요청하면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첫 대면에서는 회사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식사를 진행하면서 적당히 분위기나 눈치를 보게 되며,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스키를 잘 모르던 시절에 숙성 연도만 높으면 좋은 술이라 여겼던 것과 같이 적당한 양주 18~30년 산까지 우리의 성의를 담아 전달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 지으며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다음은 은밀한 연락을 통하여 그들이 받는 월급의 1~2개월치를 선납하고 서류에 담당자의 도장을 받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데, 왜인지 모르게 다음 단계에서 또 진행이 멈춰있습니다. 직원을 시켜 연유를 알아보면 뒷돈을 지급한 담당자는 통과했지만 그다음 사람이 우리의 '작은 성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에 또 뒷돈을 주면서 서류를 진행하며 단계를 밟다 보면 계속해서 꼬리표를 달지 않은 현금이 회계장부에서 사라지고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사업의 리스크만 우리에게 남게 됩니다.


만에 하나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된다 해도 회계장부에서 사라진 현금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 회사도 탈세 같은 불법적인 거래를 일으켜 회계 장부를 무결하게 만들어내든 아니면 또 다른 사람에게 뒷돈을 주고 우리의 회계에 문제없음으로 인식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무원 몇 명의 공무원이 열쇠를 쥐고 있는 사업은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뒷돈을 주기 시작하면 매번 성의를 보여야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금액이 늘어나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해당 담당자가 바뀌어 새로운 담당자가 올 경우에는 더 많은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다 돈을 줘야 하는 경우는 내가 줄지 말지 선택이라도 할 수 있으나 돈을 받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 오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되게 됩니다.

게다가 어느 순간에는 돈이 아니라 차명으로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으며, 똑같은 일을 해내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게 되는 순간 이러한 방법으로 사업을 버틸 수 없게 되면 사업이 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무원 개개인에 우리의 사업이 의존하면 안 되며, 이러한 경우는 기술과 혁신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비로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합리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와중에 한국에 잠시 귀국하여 한국 공무원들과 미팅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분들의 든든함에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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