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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3. 2021

나는 아직 슬픔의 방어선을 지키는 법을 모른다

방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슬픔이 차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시간은 약이다. 맞다.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윤곽을 잃는다. 누군가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도 시간과 함께 작아져 나중에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만한 사이즈가 되고 가끔씩 꺼내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크기가 줄어든다는 부분은 격하게 동감하지만, 아빠를 떠나보낸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나의 슬픔이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엄마와 웃으면서 아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지금을 보면 그 크기가 줄어든 건 확실하다. 이렇듯 눈물과 웃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1년 전만 해도 상상치 못했던 “가족을 잃은 슬픔”과의 동거.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전히 힘겹다. 이제 겨우 절대적인 슬픔과 마음의 공간을 나눌 수 있는 “공존”의 수준에 도달했을 뿐이다. 딱 그것뿐이다.

 

이런 종류의 슬픔을 경험하기 전에는 “감정은 상황이나 의식의 맥락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었다. 감정 중에는 특정 맥락이나 촉매제가 없어도 발현하는 성질의 것도 있다는 것. 나는 이 뻔한 진리를 강렬한  “슬픔”으로 배웠다.


슬픔은 어떤 이유나 맥락 없이 갑자기 마음을 때리고 의식을 강타한다. 크기만 줄어들었을 뿐 밀도는 그대로였다. 운동성 또한 고스란히 남아 압축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단단하게 꽉 채워진, 격한 운동성을 가진 슬픔이 예고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볼 때, 이를 닦고 있을 때,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을 때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의 격렬한 운동이 시작된다. 어떤 요소가 촉발의 원인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시간, 장소, 분위기 어느 것 하나 일관된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한 반응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해야 비로소 슬픔을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첨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외면과 무시보다는 부딪치면서 느끼고 깨닫는 과정의 중요성. 지금 이 글쓰기도 과정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감정에 휘둘려도, 쓰러지고 무너져도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친구의 충고 한 마디가 나를 깨운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아빠를 떠나보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 비슷할 수야 없겠지만 “슬픔”에 관해서는 선배였고 경험치도 훨씬 많은 그녀였다. 이미 경험한 자의 위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했고 또 의미심장했다. 수화기를 통해 쏟아지는 많은 “위로”의 말 중에서 경험자가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울고 싶겠지만 눈물이 나겠지만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는 울지 . 너도 많이 슬픈  아는데 그래도 어머니가  많이 슬프셔. 그러니까 어머니 앞에서는 울지 . 알았지?”


솔직히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울컥했다. 엄마에겐 남편이었지만 나에게는 아빠였는데. 그 누구보다 슬퍼해야 할 권리가 나에게도 있는데. 악쓰고 울부짖고 외치면서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털어내도 시원찮을 판에 울지 말라고 하다니. 내 슬픔도 엄마 못지않게 큰 것인데.


하지만 이내 친구의 당부를 이해하게 됐다. 나이 듦에 따라 부모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식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별은 언젠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순리이며 슬픔의 늪 한가운데에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는 다르다. 삶의 여정 그 끝까지 손을 맞잡고 걸어가고 싶은 이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무수한 일상을 통해 백년해로를 꿈꾼다. 그 누구도 갑작스러운 사별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펼쳐질 앞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아내와 자식. 그래서였을까. 나를 위해,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살아가야 할 나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팡질팡 하셨다. 하루는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또 어느 날은 당일의 기억과 감정을 과거의 행복했던 하루에 집중했다. 육신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의식은 순행과 역행을 거듭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친구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나와 엄마의 슬픔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알량한 나의 슬픔을 드러내 엄마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어려운 다짐이 또 어디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이 “이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러 고무장갑을 빼지도 못한 채 울었어야 한다든가, 차 안에서 엄마와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창가로 고개를 돌린 순간 눈물이 차올라 엄마에게 들킬까 봐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던가. 세수를 하다가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지 못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의 슬픔에 딸의 슬픔까지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방어할 수 없을 지점까지 슬픔이 차오르는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경험한 것만 수십 번인데도 여전히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요령 하나 정도는 터득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리숙하고 미숙한 내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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