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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3. 2021

슬픔에 빠져 멍 때리면 안 됩니다 1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상속 관련 절차들에 관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식 의외로 할 일이 많다는 걸 그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20대에서 30대가 된다고 해서 그 나이에 필요한 정보가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지 않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알아야 할 것을 찾고 익혀야 하는 건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특히나 부모님을 잃고 난 이후의 “할 일”에 대해서 미리 찾아본다는 건 여러 의미에서 미리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상황이 닥치면 정보를 찾고 움직인다. “부모님 사망 이후 해야 할 일”과 같은 문장을 검색창에 입력하는 건 불길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일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가능하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고 싶은 일, 그게 바로 “죽음을 위한 준비”다.




중환자실에서 아빠와 작별인사를 하고 시신기증을 끝마친 이후 어찌어찌 집에 도착한 그날 밤 이후 나와 엄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울고 또 울었다. 터지는 눈물을 삼키며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례식은 생략하게 되었습니다”는 말을 겨우겨우 잇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떤 일상으로 슬픔의 홍수를 견뎌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울고 또 울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의 슬픔은 내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농도와 밀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 이후 1년 정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 해 온 사람, 중요한 일도 사소한 일도 다 나눌 수 있는 사람, 든든한 버팀목처럼 함께 해준 사람. 이런 존재를 잃어버린다는 상실감을 난 알지 못한다. (아마 절대 알 수 없겠지) 그래서 엄마가 엄청난 슬픔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자질구레한 일은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드문드문 알아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랜 기간 동안 “(내가 할 수밖에 없는) 해야 할 일”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나 또한 슬픔 외의 그 어느 것도 감당할 여력이 없었을뿐더러 아빠의 삶 하나하나를 정리한다는 행위가 아빠를 배반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 “정리”지, 이 세상과 아빠를 연결하는 끈을 내 손으로 끊어야 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과 관련된 그 어느 것도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잘난 아들이 와서 하면 되지, 딸인 내가 나서서 뭘 어쩌겠느냐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바보처럼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믿으며 방치할 것이라는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살아남은 이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흔한 말처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름 몇 번의 검색을 통해 어떤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슬그머니 일으킬 때 즈음 친척 한 분이 “한정승인”이라는 단어를 넌지시 꺼냈다. 우리가 모르는 아빠의 채무관계가 있을지 모르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한정승인” 신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부모님 사후 해야 할 일 목록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것이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이라는 단어였다. 인터넷 검색으로 접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가족의 처지를 판단해 보니 그 어느 쪽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와 상의도 없이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설픈 결론을 혼자서 내리고 있던 때였다.


친척 분의 한 마디에 조금 더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에서 아빠의 채무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상속포기가 됐든 한정승인이 됐든 사망일을 기준으로 3개월 내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아빠의 재산 및 채무 상태 확인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조급해진 마음에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한 후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와 상의 후 알고 지내는 법무사 분께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한정승인을 신청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파악된 아빠의 채무 내용을 보여 드린 후 “한정승인” 신청을 했으면 좋겠다는 친척 분의 이야기가 있어서 신청에 관해 상의드리려고 왔다고 하니 법무사님은 단번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꼭 했으면 좋겠다는 친척 분의 당부도 있고 해서 하는 뱡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던 나와 엄마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자 “피상속인 재산 내용에 채무가 존재하지 않으니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라는 설명을 다시 덧붙이셨다.


“그래도 저희 친척 분 말씀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신청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우리의 사정과 심정을 한 번 더 설명하니 “특별 한정승인”에 대해 알려 주셨다.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게 원칙이나, 전산상에서 파악된 채무 내용이 없으니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는 없고 혹 나중에 아빠 지인 중에 채무 관계있는 사람이 채무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온다거나 했을 때에 “특별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져오신 금융 거래나 재산 목록 내역을 보니 “한정승인” 생각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법무사님의 마지막 한 마디에 친척분의 연락에 한껏 부푼 걱정과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죄책감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법무사 사무실을 나서며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또 다른 절차 및 서류와의 씨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특별 한정승인에 대해서는 검색하면 바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가능하면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파악된 부모님의 재산 및 채무 내용을 가지고 전문가에게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해야 하는 일에 관해서 잘 정리된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또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카페도 있는 걸로 안다. 그런 곳에 방문하면 꼭 해야 할 일이 깔끔하게 목록화되어 있으니 해당하는 부분을 꼼꼼히 체크하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시는 것이 단기간에 끝낼 수 있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좋다. 나처럼 넋 놓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슬픔에 빠져 멍 때리면 안 됩니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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