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나 Oct 23. 2021

슬픔에 빠져 멍 때리면 안 됩니다 2

보험 계약자 및 수익자 변경 등

 <슬픔에 빠져 멍 때리면 안 됩니다 1>과 이어집니다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된 것 하나는 아빠가 엄마를 수익자로 보험 하나를 계약해 놓으셨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보험을 계약한 건 대략 10년 전으로 보험료 납입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금시초문이라는 엄마의 반응에 오랜 기간 아빠가 몰래 엄마를 위한 준비를 해오고 계셨다는 사실이 기폭제가 되어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게도 엄마를 향한 아빠의 사랑과 배려에 감동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 신청으로 아빠의 은행 계좌는 동결됐고 두어 달의 보험료 또한 지불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보험 계약자와 수익자가 아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정정하는 절차도 밟아야 했다.


일반적인 케이스라면 보험회사 고객센터에 전화해 필요한 서류를 묻고 그걸 가지고 지점을 방문하면 된다. 하지만 상속자 중 한 명이 외국에서 살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담원은 외국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인데… 체류 국가에 따라 준비 서류도 달라지나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만약 미국에서 사신다고 하면 영사관이 멀어서 시간이 좀 걸리잖아요. 일본이라고 하시니 서류 준비에 긴 시간이 걸리진 않겠네요.”


고객센터 담당 직원이 알려준 서류 중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이었다. 상속인이 모두 다 지점(혹은 은행)에 방문하면 상관없다. 하지만 직접 방문이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국외 체류라면 가까운 영사관에 가서 위임장을 발급받아야 하고 또 인감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부모님 사망과 관련해서 금융기관에 방문해야 한다면 위 두 가지 서류는 필수다. 두 개의 필수 서류 발급을 위한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한 후 움직였다면 간단히 끝낼 수도 있는 절차였지만 나의 조급함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의 첫 번째 선택은 동생의 인감 등록이었다. 이때부터 인터넷 검색 결과를 뒤적거리는 것에 지친 나는 곧바로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인감 등록 대리 업무에 관해 문의했더니 몇 명의 직원이 돌아가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다가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 재외공관(영사관)에 방문해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건네준 서식을 우편으로 주고받는 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정부 24에서 같은 서식 파일을 찾아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이 보낸 서류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까지 포함해 약 3주에 걸쳐 동생 인감을 등록에 성공했다(인감을 등록하고 인감증명서를 받아 들었을 때 이게 뭐라고 은근히 기뻤다.)


두 번째는 “위임장” 차례였다.

보통 영사관에서 발급해주는 위임장은 일반용, 금융기관용으로 두 가지가 있다(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영사관 위임장은 가족관계 증명서나 기본증명서처럼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발급자는 어떤 이유로 위임장이 필요한지, 대리인에게 어떠한 업무를 위임하는지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명확”에 “상세”라는 단어를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명확이니, 정확이니 상세와 같은 표현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혹 위임하고자 하는 업무 내용이 명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융기관에서 퇴자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창구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보험회사 관련이니 당연히 금융기관용으로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던 나와 동생은 생각 없이 “일반”으로 발급받아서 다시 “금융기관용 위임장”을 발급받아야 했다. 동생이 시간을 쪼개 영사관에 가야 하는 시간, 발급받은 위임장이 우편으로 도착하는 시간을 합하면 이 또한 약 3주는 걸린 것 같다.




보험회사 상담직원과 통화한 지 대략 한 달 반이 지난 후, 인감증명서와 금융기관용 위임장을 들고 근처 보험회사 지점으로 향했다. 나름 고된 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진행될 거라 자신했다. 나의 완벽한 서류를 보란 듯이 내밀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유지하며 “빨리 끝나라”라는 주문을 외우던 그때 창구 직원이 말했다.


 “위임장이 발급받은 지 좀 됐네요.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다시 오셔야 할 수도 있겠어요.”


창구 직원은 심사자에 따라 발급일이 지난 위임장의 효력을 의심할 수도 있다며 불안한 말을 쏟아냈다. 보험 계약자 및 수익자 변경 신청을 위해 방금 작성한 신청서류도  출력 시 당일 날짜가 찍히기 때문에 오늘 안 된다면 다음 방문 시 신청서 작성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50 정도를 해 두었으니 혹 오늘 잘못된다고 해도 나중에 나머지 50만 하면 된다’ 식이 아니었다. 순간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반복되는 서류 준비는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한 번 해봤으니 또 못할 것도 없었다. 자잘한 과장이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경험한 번거로움과 비교하면 일처리도 빠르고 걸리는 시간도 짧을뿐더러 서류만 제대로 갖춘다면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두렵게 했던 것은 번거로운 과정이나 절차 이 모든 일의 근원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었다. 빨리 이와 같은 모든 절차를 훌훌 털어버리고 “아빠가 돌아가셔서” 해야만 하는 일들과 작별하고 싶었다.


가져온 서류를 창구에 제출하고 대략 1시간쯤 기다렸을까. 고맙게도 창구 담당 직원은 심사과에 전화를 걸어 몇 번이고 상황을 확인해줬고 돌아온 답은 “잘 진행될 것 같으니 댁에서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였다.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답이어서 또 한 번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했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또 서류 발급한답시고 이리 뛰고 저리 뛸 필요가 없게 됐다.




보험 계약자와 수익자 변경이라는 산이 험난해서였을까. 아빠 명의 은행 계좌 해지, 자동차 상속 및 명의 변경 등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준비해야 할 서류나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은행 혹은 관공서에서 “사망자” 혹은 “고인”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나를 괴롭혔다. 법적 상속자로서 나는 아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눌러쓰고 또 꾹꾹 눌러썼다. 남겨진 가족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이 모든 절차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혹은 살아간)이의 의무라는 걸 알지만 “아빠의 죽음”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듯한 행위가 나에겐 매번  잔인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변함없이 일상을 만들어가는 나 자신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살아가야 하기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일을 묵묵히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그게 삶이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에 빠져 멍 때리면 안 됩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