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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Apr 22. 2019

비효율성의 기쁨

익숙하지 않은 행복의 방식, 포틀랜드로부터

지난 여름, 만원 지하철을 탔다. 내 앞에는 땀을 저렇게 흘려도 되나 싶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푸짐한 덩치로 본의 아니게 양 옆 승객들을 겸손하게 만든 아저씨. 나는 그 앞에 서서 시선을 다른 데 두려 애 쓰고 있었지. 그 때, 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막 닫히려는 문 사이로 매끈하게 달려 나가더라. 갑작스레 자리가 생겼다. 원래 같으면 덥썩 앉았을 나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저씨 엉덩이대로 난 자국이 진한 초록색(땀으로 젖어있었다)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으로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이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군. 이제야 살겠다는듯 양 옆 승객들은 있는 힘껏 몸을 이완시켰다. 이해한다. 몸집이 있던 아저씨에 비해 나는 삐쩍마른 호구처럼 느껴졌을테니. 내 어깨를 양 옆에서 꽉 누르는 압박감과 밑에서 올라오는 뜨겁고 축축한 기운에 나는 꽤나 서러워졌다.





국가의 3요소가 있다. 국민, 주권 그리고 영토. 영토가 중요한 시대는 광개토대왕님이 만주 벌판을 뛰어다니시던 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인구 밀도가 높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밀도 높은 삶의 현장에 뛰어들고 나니, 그것들이 내 숨을 조여오는 거다. 지하철 안에서 앞사람의 몸의 굴곡이 내 몸에 그대로 전해질 때는 광개토대왕님이 심히 그립다.



내가 포틀랜드에 가서 편안함을 넘어서 질투와 분노를 느낀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이 그 곳에 있더라. 옆자리의 가족 사정을 듣지 않으며 밥 먹을 자리와 이름 모를 아저씨의 체온과 날숨을 느끼지 않을 공간.



포틀랜드의 코아바 카페는 마치 아마존같았다. 닭장에 갇혀있던 닭이 아마존에 놓인다고 생각해보자. 닭이 좋다고 날뛸까? 아니 아주 어색해서 쭈뼛쭈뼛 거릴거다. 내가 딱 그랬다. 카페는 아주 아주 커다란 창고 같은 공간이었는데 웬만한 중소기업의 사무실보다 큰 크기였다. 근데 그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달랑 두 개. 두 개 라니! 그나마 벽을 따라서 혼자 노트북을 할 수 있는 바(bar)가 붙어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뭐냐고? 아무것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광고 회사에 다니며 3년 동안 담당했던 커피 광고가 생각났다. 소품으로 가득 쌓여있던 커피콩 포대를 끌고와 곳곳에 장식하고 싶은 본능이 움찔움찔거렸다.



Coava cafe, Portland.
Coava cafe, Portland.



그 카페에 들어서서 내가 제일 처음 한 생각이 '이래가지고 매출이 있으려나?'라는 건 슬픈 일이다. 한국에서 이런 컨셉의 가게를 만들려면 저기 남양주 쯤으로 내려가야 할테다. 그나마 거기에서도 하루 벌이를 제대로 해내려면 테이블을 테트리스처럼 요리 조리 쌓아서 서울 손님들을 가득 앉혀야 할텐데.



두 개의 테이블 중 하나에는 남자 둘이 앉아 자리를 넓게 쓰고 있었다. 나는 나머지 한 개에 앉았다. 그리고 벽 쪽 바(bar)에 앉아 노트북을 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뻗어봤다. 그 사람이 손바닥 크기로 보였다. 아주 멀리. 아주 아득하게. 그가 노트북으로 무얼하는지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중학교 때 동방신기 콘서트를 보러가서 손을 뻗었던 게 기억났다. 우리 오빠들이 새끼 손톱만하게 보였었지.



며칠 후 유명하다는 다른 카페를 찾아갔다. 근데 하필이면 우리가 갔을 때 카페가 문을 닫고 있었다. 문 닫는 시간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그 옆 가게들을 두리번 거렸다. 호프집이 하나 보였다.  인테리어가 그렇게 번쩍 거리지 않고 나무 냄새 그득한 것이 커피도 팔지 않을까 싶어 한 낮에 호프집 문을 열었다. 역시나. 메뉴판에는 커피도 팝니다!라고 써있었다.



마르고 긴 얼굴에 수염이 조금 난 사장님이 접시를 닦고 있었는데 며칠 안씻은 듯 쾡한 얼굴이 커피와 술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다웠다. 사장님께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다. 사장님은 요 옆 집 카페가 유명한데 닫았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실 아이스 커피는 안되지만 얼음이 좀 남았으니 만들어보겠다고 하셨다. 가려던 카페를 실패했다는 공허함에 지쳐있었기에 사장님의 친절이 더 과하게 와 닿았다. 아주 간절한 톤으로 땡큐를 속삭이며 지갑을 열었다.



근데 그 때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돈 내지 마세요"라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는 어이 없다는 듯이 "네? 왜요?" 라고 반문했다.

사장님은 또 한 번 아무 표정 없이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약 10초가 흐르고 나는 도저히 못 참고 다시 물었다. "사장님, 돈 버셔야죠. 장사 안하세요?" 그리고 난 세 번 째 무표정한 대답을 받았다. "돈은 다른 걸로 벌면 돼"



젠장. 난 그 대답에서 왜 패배자의 기분을 느꼈을까. 왜 이 사람은 커피 세 잔 값, 한화로 만원도 넘는 돈을 안받는 걸까. 이런 포틀랜드의 모습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논리는 한가지다. '곶간에서 인심난다.' 경제적으로 잘 사니까 부릴 여유가 있는 거라고 해석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천조국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미국이란 땅이 경제 강대국에 자원까지 풍부하다는 말은 내가 또해서 뭐하나.





근데 이 말은 달리하면 그만큼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흔히들 포틀랜드를 히피의 도시라고 한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제멋대로 입은 옷으로 제멋대로 예술을 하는 남자. 포틀랜드 근처의 로컬 푸드를 주로 소비하고 지역성을 보존하는데 모두가 힘을 쓰는 자유로운 공동체. 포틀랜드의 이미지다. 하지만 내게 포틀랜드에서 발생한 히피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량이라는 단어를 택하겠다. 그들이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택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 전제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 일이다. 거기서 자유라는 놈이 시작되는 거다.



한국에서 갔던 어느 카페가 떠오른다. 테이블 간 거리가 20cm. 20개의 테이블이 큰 공간 가득 다닥 다닥 붙어있는 곳이었다. 옆에 있는 학부모 모임에선 명문대 수시모십 정보가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어머님들의 다급한 숨결마저 여과 없이 내 귀에 때려박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이야기를 귀 담아 듣게 됐고 어느새 마음 속으론 '엄마 제발 그만 좀!'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카페에서 내는 돈은 음료값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값이다. 나의 '한적한 시간과 공간 추구'라는 측면에서 그 카페는 비효율적인 곳이었으나, 사장님 입장에서는 효율성이 아주 높은 기특한 가게였다. 그 커다란 공간에 테이블이 가득 차있고 시끄러운 음악 덕에 사람들의 입출입도 무의식적으로 빨라지고 있었다. 시간 당 수입이 극대화된 카페. 매우 효율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넉넉한 공간과 넉넉한 시간을 제공하는 느긋한 카페가 많다)




 



버스를 타지 않고 이 곳에서만큼은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아주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데 커다란 들판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너른 잔디 밭위로 한 쌍의 커플이 느긋이 지나갔다. 영토가 넓은 곳에 산다는 건 비효율적인 기쁨 속에 산다는 거구나. 단 한 쌍의 커플이 이렇게 너른 들판을 누려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며칠을 이미 걸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수행할 목표를 두지 않고 걷는 것이 비효율 시작일 거라 믿었으니까. 그러다 한 길목에 빼곡히 뭉쳐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결혼식인 모양이었다. 아주 아주 작은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며칠 전엔 for sale이 붙어 있는 빈 공간이었는데 어느새 그 안에 테이블들이 놓여있었다. 그러더니 신부가 허름한 길거리를 버진로드 삼아 들어섰다. 신부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유리창 너머에는 이미 자리가 없다. 너무 작은 공간이라 친구들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밖에 서서 결혼을 구경했다. 디저트도 얻어먹지 못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하객들이지만 길거리에 서서 기쁨을 나눈다. 관광객들과 섞여서 신부를 아주 먼발치에서 보지만 전혀 섭섭해보이지 않았다.




Sauvie Island Nude Beach
Sauvie Island Nude Beach
Sauvie Island Nude Beach



효율성을 논할 때 돈과 시간은 빠질 수가 없다. 내가 20만원을 축의한 단짝의 결혼식에서 식권 한 장 못받는다면 나는 서운할 것인가 아닌가. 그것은 나에게 효율적인 일인가 아닌가. 이딴식의 가정을 해보는 나 자체가 좀 부끄럽지만. 암튼 서운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뜸 말하진 못하겠다. 어쩌면 나는 효율적 기쁨을 계산하는 데 특화된 인간인지도. 그래 나는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인거다. 슬프다.



Sauvie Island Nude Beach. 어째뜬 이것은 포틀랜드에 대한 글이니,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비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누드가 붙지만 꼭 누드는 아니니 걱정 안해도 된다. 나는 수영복을 준비해 가지 않았는데 막상 가보니 미친듯이 수영을 하고 싶은거다. 주섬 주섬 반바지를 수영복 삼아 물에 들어갔다. 으, 그 짜릿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후비루(코와 목구멍 사이)에서 느껴졌던 자유의 맛!



조금 일찍 퇴근 한 날에는 차를 끌고 30분을 나가서 이렇게 매일 수영을 하고 싶다. 걸음 걸음마다 윗도리 아랫도리 하나 둘 벗어 던지고 숨이 헐떡일 때까지 수영을 하고 싶다. 멤버십을 보여달라거나 1일권을 구매하라고 가로막지 않는 강물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그 강에서 배꼽을 내밀고 둥둥 떠다니며 시간을 마구 낭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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