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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Jun 25. 2018

OECD 변태지수

짧은 인생, 계속 변하고 살아야지.





이 세상엔 영원한 인연도
영원한 관계도 없습니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발리의 요가 수업이 떠올랐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걷기만 하는 수업이었는데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다른 수강생과 동선이 겹칠 때마다 눈빛을 교환하고 다시 갈 길을 가는 거였다. 외국인 강사는 우리가 둥그런 방을 두서없이 걷는 동안 가운데 서서 가만히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 세상엔 영원한 인연도 영원한 관계도 없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그 허무한 명제를 계속해서 들으며 나는 되도록 큰 보폭으로 교실을 걸어 다녔다.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은 갈색 눈과 검은 수염의 중동 남자였다. 마치 이런 것에 익숙한 요가 고수인척 최대한 침착히 그의 눈을 바라봤는데 그의 커다란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힘껏 미소를 보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다음은 온 몸에 타투가 가득한 초록 눈의 여자였다. 그녀는 내 작은 눈을 보며 눈이 참 예쁘다고 했다. 네 눈도 예뻐라고 어색하게 대답하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3-4명의 사람들을 마주치고 지나치다 보니 요가 교실이 마치 작은 실험실처럼 느껴졌다. 시간과 공간과 인연이라는 세개의 축을 단순화 시킨 실험실. “영원한 건 없습니다”라는 요가 선생님의 말을 서른번 쯤 반복해서 듣자 비로소 허무함 대신 안정감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베를린 지하철에서 랜덤 플레이로 들은 노래에서 발리의 요가 수업이 떠오른게 우연은 아니었다. 사람이든 관계든 사랑이든 결국엔 변해버리고 만다는 명제를 담담히 인정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와 요가 강사의 말은 꽤나 비슷하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더 성숙해질거라는 절박한 위로랄까. 그리고 그 기저에는 단단한 허무가 버티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 속에서 헤매며 하얗게 질리고 나서야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 짧은 인생 영원해서 뭐하나, 계속 변하고 살아야지.


장난끼 가득한 우나(Una)의 얼굴


6년만에 독일에서 재회한 친구 우나는 그 명제를 제대로 즐기며 살고 있었다. 6년 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공부할 때 우나는 한 달간 나와 기숙사 방을 함께 썼다. 부동산 문제가 생겨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일을 해결할 때 까지 내 방에 묵고싶어했다. 낙천적인 그녀가 좋았고 그녀의 낙천적 해결 방법으로 나와의 동거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했다. 그녀는 한 달동안 내 침대 아래서 침낭을 놓고 잠을 잤다. 그녀는 자신을 ‘homeless’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천식으로 기침을 달고 사는 나와 달리, 그녀는 건강한 꼴초였다. 기분이 좋아도 담배를 폈고 기분이 나빠도 담배를 폈다. 기침을 참으면서도 난 그녀가 담배 피는 모습을 좋아했다. 내 기숙사 방은 1층이어서 통창을 열고 나가면 바로 들판이 펄쳐졌다. 그 들판 끝에는 눈이 녹지 않은 알프스 산맥이 줄지어 있고 가끔은 내 방 앞으로 사슴 가족이 지나갔다.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잘츠부르크의 대학이란 그런 곳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웃통을 벗은 학생들이 빙하가 녹아 내려오는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 그리고 그 풍경 한 가운데에는 빨간 라이더 자켓을 입고 여신 담배를 피우는 우나가 있었다. 가끔 난 우나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협박하며 그녀가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는 동안 창문을 잠궈버리기도 했다. 그녀는 그럼 귀여운 표정으로 떼를 썼다. 잘츠부르크의 겨울은 냉혹했으니 꽤나 고통스러울 법한데도 그녀는 낄낄대며 밖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하루는 그녀가 울면서 방에 돌아왔는데 교수가 자신이 원하는 성적을 주지 않아서 였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에 지원한 인턴십에 차질이 생길거라고 걱정했다. 그 기간엔 서로 우는 일이 많았다. 서로 가까워질 수록 살아오며 겪었던 사랑이야기,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으며 아침을 맞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술과 담배로 밤을 지내고 나면 다음날 우나는 날 데리고 맥도날드로 갔다. 그녀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야 해장이 된다고 했다. 빨간 부츠에 빨간 라이더 자켓을 입고 맥도날드를 입에 우겨넣는 그녀는 언제나 사랑스러웠다. 난 줄곧 그녀에게 말했다. 너를 정말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낙천적이면서도 열정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규칙이 있는 그녀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우니까.


우나가 먹던 베지테리안을 위한 젤리
우나와 매일 갔던 함부르크의 비건 레스토랑
우나와 매일 갔던 함부르크의 비건 레스토랑


그리고 6년후 그녀를 다시 만난 거다. 6년만에 다시 만난 친구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너 왜이렇게 살 빠졌어?”였다. 그녀는 어떻게 첫마디가 그따위인지에 대해 두고 두고 뭐라고 했다. 하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말랐다거나 날씬하다는 말보다는 단정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단정한 육체와 평온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그녀는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일단 담배를 끊었다.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냥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베지테리안이 되었다. 치즈와 계란은 먹는다고 했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이유는 없다고 했다. 대체 무슨 계기로 너가 베지테리안이 되었냐고 이틀에 한 번 씩 물어봤지만 별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다. 벌써 5년째 베지테리안이니, 나와 헤어지고 1년 뒤부터 그녀의 삶에는 건강한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독일에서 남자친구를 만날 무렵이라고 했다. 그 즈음이라면 내가 한국 대학에 돌아와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하고 도서관에서 먹는 삼각김밥과 에너지음료를 미덕으로 여겼을 때다. 젠장. 6년 전 느꼈던 유럽인들에 대한 열등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올 뻔 한 걸 겨우 참아냈다. 아무래도 난 고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베지테리안이 된 게 그닥 부럽지 않았다. 베지테리안이 되고 마음과 몸이 다 가벼워졌다며 샐러드를 먹는 그녀 앞에서 나는 슈니첼(독일식 돈까스랄까)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행복했다.


버스에서도 책을 읽던 우나의 모습
라트비아어로 된 소설책을 읽던 우나


뭐 그녀의 건강 및 신체적 변화야 누구나 살면서 겪는 거라 치자. 그녀의 새로운 습관 하나가 날 진짜 놀라게 했다. 밤이면 나와 마지막 기차를 타고 시내 클럽에 가서 놀고 첫기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던 그녀가 이제는 침대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 될 두꺼운 책에 그녀는 라트비아어로 계속 글을 써내려갔다. 페이지 마다 다른 질문이 써 있는 글짓기 교재같은 책이었다. 예를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10분 동안 명상을 한 후 그들에 대해 써보자’, ‘당신은 오늘 무엇을 먹었는가? 그 음식들의 맛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 감상에 대해 써보자’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이다. 일기도 아니고 이런 질문들에 왜 굳이 답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갔으나, 그녀는 정말 책이 시키는 대로 명상을 하거나 오늘 먹은 음식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그 책을 정말 좋아했다. 한 사람의 생각이란 관성 때문에 자신이 관심있는 것, 잘 생각할 수 있는 것만 계속하게되는데 그 책 덕분에 다양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그녀의 몸과 마음이 다 단정해졌구나. 6년은 참 긴 시간이구나. 열심히 글을 적어내려가는 우나 옆에 누워 낯선 남자와 키스를 나누던 6년 전 어느 밤의 우나를 떠올렸다.


틈 날 때마다 글을 쓰던 우나의 모습
틈 날 때마다 글을 쓰던 우나의 모습


 우나의 친구 믹키를 만났다. 믹키는 베를린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큰 토종 베를리너였다. 한국 나이로 32살인 믹키는 현재 레스토랑에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녹색당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Sudblock이라는 술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술집 천장에는 거대한 미러볼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화장실은 하나였는데 남자, 여자,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무성애자 등등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써있었다. 믹키는 웃음이 많고 진지한 청년이었다. 그는 미르켈과 독일의 난민 관련 법들에 설명해줬고 보수화되가고 있는 정세 와중에도 젊은 세대들에게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녹색당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레스토랑 알바를 한다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의아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은 그 사람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단정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폭력적인 지표기 때문이다. 하지만 믹키는 무척이나 말끔하고 당당해 보였다. 그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교육 대학원을 간다고 했다. 교육 대학원에서 수업을 마치면 집에와서 공부를 하다가 오후부터 레스토랑으로 알바를 하러 간다. 지금 자신의 일이 맘에 들지 않지만 곧 교사가 될 생각에 행복한 생각 뿐이라고 했다. 우리 나라 초등학교에서 1인 교사당 학생 수에 대해 물어보는 믹키의 표정은 곧 웨이터가 아닌 교사로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차있었다.


웃음이 참 많은 베를리너 믹키(Mickey)
믹키가 살던 멋진 아파트
믹키네 옥상에서 보던 풍경


그런 우나와 믹키에게 이제 내 얘기를 할 차례가 되었다. 회사 일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도 없다는 나의 이야기. 무리한 일로 몸의 이곳 저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양이 생겼다는 이야기.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과로를 했던 이야기. 그러다 우울함과 불안장애가 왔다는 이야기. 어느 날 치과에 가서 간호사가 얼굴 위로 천을 덮어주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휴직을 결심하고 이곳에 왔다는 결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우나와 믹키가 입을 모아 말했다.


 “Oh my god, you gotta change your job.”  


우리는 너네처럼 변화하기가 쉽지 않아. 일을 바꾸려면 아마 학교부터 다시 가야할지도 몰라. 시험도 다시 봐야 하고 너무 힘들다고. 그럼 돈은 어떻게? 변화하기 두려운 이유를 쏟아내는데도 그들은 평온한 표정이다. 믹키는 교육대학원을 다시 다니고 있는 자신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알바를 하며 공부를 하는 것도 기쁨이라고 했다. 30이란 나이는 전혀 늦지 않은데 대체 뭐가 무섭냐고 했다. 나이는 상관없다고 인생은 한 번 뿐이라고. 제발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한국에서 누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면 ‘꼰대 새끼, 너가 뭘알아’라고 생각했겠지만 독일의 웨이터 청년이 말해주니 그게 또 다르게 들리더라.


생각해보면 내가 늘 무서워 하는건 ‘변화한다’는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변화를 하려면 인생은 번거로워 진다. 어딘가에 또 지원해야 하고 무언가를 위해 공부해야하고 실패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무섭다. 물론 저들이 이해 못하는 것이 분명 있다. 대한민국의 우리는 이미 30년을 경쟁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고 또 패배하고 그러다 우연히 친구를 짓밟고 올라가면 행복해지는 처절한 삶을 살아야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건 이 ‘나이’에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는 거다. 모두가 종착역을 정하고 출발할 때, 나는 알 수 없는 정거장에 내려 목적지 설정부터 다시 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배운 것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거기서 알려주는 데로 가는 것 뿐이었다. 좌회전 하라면 좌회전하고 직진 하라면 직진하고, 죽어라 따라가며 친구들을 따돌리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삶. 그런데 목적지 설정을 다시하라니, 무서울 수 밖에.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OECD 1위야. 노인 빈곤률도 OECD 1위야. 그랬더니 믹키가 묻는다. 너넨 삼성도 있고 잘 산다더니 왜그래? 그러게 말이야. 믹키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한민국이 꼴찌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가 떠오른다. ‘변태지수’. 우리는 얼마나 변화에 능동적인가. 얼마나 새로움에 열려있는가. 그런 걸 측정하는 지표이다. 내가 베지테리안이 된다고 하면 유난스럽다고 뭐라할 팀원들이 떠오른다. 내가 만약 지금 교사가 되고 싶다면, 난 정말 이 일을 때려치고 알바를 하며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마 1년 고민하다가 늦었다고 포기할게다. 변화무쌍하게 살고 싶다고 수없이 다짐해왔다. 언젠가 사주카페 아줌마가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계속 변화하며 살 팔자라고 해서 참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5년째 같은 회사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출근하고 같은 복도를 따라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 사주에서는 분명히 내가 유학도 가고 이직도 하고 바쁘게 산다고 했는데. 나의 변화는 언제오려나, 대리가 되고 차장이 되는 변태는 뻔하다. 우리 아부지 세대야, 대리에서 차장으로 차장에서 부장으로 그리고 은퇴자로 변태해서 거실 소파에 다시 고치를 트는 삶을 살고 있다지만 나는 좀 다른 길을 가고 싶은데. 그렇다고 이민을 간다든가 하는 거대한 변화는 기대도 안한다.


나비가 되었는데 날지 못하고 같은 나무에만 붙어 있어선 재미가 없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날개를 적셔도 보고 시퍼런 꽃에도 앉아보고 검정색 꽃에도 앉아보고 어린아이의 손에 잡힐 뻔도 했다가 죽을 고비도 넘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번거롭긴 해도 재밌다. 올 해도 6개월이 지났다. 지금이라도 변화를 계획 해본다. 매 달 처음 보는 빅이슈 판매원 분께 잡지를 사는 거라든지. 한 달 동안은 쇼핑을 그만해 본다든가.  베지테리언이 어려우면 소세지라도 금식해본다든가. 음, 아님 퇴사. 정말 퇴사를 해볼까나. 퇴사가 요즘 사람들의 변태 트랜드라든데.


에이씨 안되겠다.

나는 아직 퇴사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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