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말에 힘을 실어주는가
요즘 책 제목들에는 '퇴사', '요가', '먹기'같은 행위 명사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의 어떤 이력보다도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똑똑한 자가 아니라 경험한 자를 원하고, 그래서 구체성을 띄는 문체와 사랑에 빠진다. 회사를 다니며 몇 알의 우울증 약을 삼켜야 했는지, 퇴사를 하던 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경험에 대한 증언은 섬세할수록 좋다. 관념적인 주장보다 사적이고 구체적인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다.
담백한 증언은 우리에게 그 어떤 관점도 강요하지 않는다. 증언은 존재할 뿐 전략이 없다. 상대를 설득시키겠다는 노림수가 없기에 증언은 언제나 더 친근하고 믿음직스럽다.
얼마 전에 TV 광고를 보다가 멍하니 멈춰섰다. 광고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게 어찌나 오랜만이었는지. 무려 국가보훈처의 광고였다. '대한민국에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기획물이었다. 그런데 그 노골적인 목표가 꽤나 담백하게 달성되고 있었다.
보통 아나운서나 성우의 듬직한 나레이션으로 구성되는 국가 기관 광고에 등장한 건 난생 처음 보는 할머니였다. 흰색 정장을 입고 굳건한 표정을 지은 할머니는 나이든 목소리 특유의 잔잔한 떨림을 숨기지 못한 채 나레이션을 이어갔다. 다소 낮은 톤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곧 화면에 손글씨 서체의 자막이 떴다. "6.25 참전용사 김명자 드림"
이 광고가 하고 싶은 주장은 참 많다. 우리나라는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힘을 모아 역경을 이겨 내왔어. 여성, 가족,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그 주인공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야.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했으면 아마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텐데. 6.25에 참전한 '여성' 용사가 등장함으로써 모든 게 달라졌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듣고 나라를 지켜낸 여성의 말에는 지금까지 못 느껴 본 힘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힘이 있다'라는 말은 이제 국가기관의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몸 소' 지켜낸 증인의 말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을 때조차, 그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데 힘을 보탠 새로운 인물의 등장. 그녀가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건강하고 멋지게 존재하고 있음에, 우리는 '힘'을 느낀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소비자들이 상품을 써보고 직접 후기를 말하는 '테스티모니얼(증언형)' 광고가 줄줄이 올라온다. 진짜 소비자인지, 아니면 섭외된 모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말하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구체적인 감상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정갈한 목소리와 정제된 언어를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한세기가 지나면서 자엽스럽게 체득한 감별력이다. 잘 짜여진 메세지도 어떤 화자를 만나냐에 따라 구태의연한 주장이 될수도 있고 살아있는 증언이 될 수도 있다. 추상적이지 않은 메세지는 없다. 추상적인 메세지에 영혼을 불어 넣기 위해 누구의 입을 빌릴 것인가.
2020. 0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