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안 May 28. 2017

나의 도시락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별 해당사항 없지만 한 때의 나는 혼자 어딘가에서 밥을 먹는 것이 창피했다. 가끔 인터넷에 돌아다니다 보면 '복학생의 점심시간'같은 제목으로 화장실 변기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점심을 해결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함께 담은 게시글 등을 만날 수 있는데 참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맘이 아프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개인적으로 혼자 밥을 먹을 때 왠지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느끼는 것은 '불쌍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는 것은 삶의 끼니의 영역을 벗어난, '사회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였다. 들뜬 마음으로 소풍을 갔던 날 점심시간이 되자 다 같이 밥을 먹자는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반 친구들은 엄마표의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꺼냈다. 나도 아침에 할머니가 싸주신 땅콩크림빵, 소보루 같은 빵을 꺼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도시락'에 대한 어떤 이미지 자체가 없었다. 점심시간이니까 단지 끼니를 때울 무언가를 먹는 시간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빵을 꺼냈던 그때까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으나 곧 '어.. 이게 아닌데..'싶게 되었다. 다들 도시락을 꺼내 유부초밥, 주먹밥, 볶음밥, 김밥(치즈, 참치, 김치 등)을 펼쳐놓고 네 것 내 것 없이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 엄마는 이걸 준비해줬어. 너희 엄마는 이걸 준비해 주셨구나.'를 이야기 나누는 장관이 벌어졌다. 왠지 나 빼고는 다 좋았고 다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빵에 대하여선 '나도 한 입만 줘.'를 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도시락을 맛보려면 내 빵을 누군가가 먹고 싶어 해야 했는데 아무도 그러하질 않았다. 나의 도시락이 순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소풍에 따라온 친구들의 몇몇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을 위한 도시락까지 따로 준비해 왔었으며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서로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호호호" 하며 도시락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그때 당시에 김영란법 같은 건 없었으므로) 그때 따로 자신의 아이에게 줄 과일을 더 가져다주던 한 학부모가 나에게 물었다. "얘야, 넌 도시락이 없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같은 돗자리에 앉아있던 모든 친구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나는 손에 쥔 빵을 부스럭거리며 당황스러워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학부모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얘들아 여기 친구 도시락 좀 나눠줘~"


 그제야 친구들이 나의 빵을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넌 왜 빵 가져왔어? 도시락 안 가져왔어? 너네 엄마는 도시락 안 싸줘? 등등. 그때 나는 나의 도시락이 '불쌍하다고'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만 6세의 나의 자존심 따위가 고작 한다는 말이 이것이었다. "우리 아빠가 빵집 사장님이야. 이 빵도 아빠가 가져가라고 싸준 빵이야."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너네 아빠 멋지다!!! 나도 한 입만 먹어볼래~~~"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우리 아빤 빵집 사장님이 아니었다. 그냥 이 빵은 할머니가 아침에 등굣길에 나와 같이 빵집에 들러 내 가방에 넣어준 빵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첫 번째 소풍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도 운동회니, 소풍이니, 현장학습이니 여러 가지 교외 활동에서 할머니께서 자주 김밥을 싸주시긴 하셨지만 그 당시 친구들이 싸오던 김밥에 비하면 조금 못생긴 김밥이었고 조금은 평범하고 지루한 김밥이었다. 친구들의 김밥은 여러 가지 재료들이 들어간 특별한 김밥이었기 때문이고 여전히 나의 김밥은 항상 인기가 없었다.

 후엔 정말 나도 '나의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가져갈 수 있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나의 엄마는 정말 요리를 잘 하셨으며 손도 큰 분이셔서 여중생, 여고생을 위한 도시락 치고 많은 양을 싸주셨었다. 내가 가져간 김밥을 보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한 입만"을 외쳤고 난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김밥을 바꾸어 먹으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소풍에 대해서 늘 떠올려져 마음이 쓰라렸다. 지금의 내 도시락은 불쌍하지 않지만 예전의 나의 도시락은 불쌍했으니까.


 이제는 뭐 먹는 것에 있어서 그런 게 어디 있나, 내가 먹을 건데 뭔 상관. 이라며 시종일관 마이웨이를 수호하고 있다. 밥을 먹고, 끼니를 채운다는 것은 '사회적인 영역'을 나타낸다. 어떨 땐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위치를 형성하기도 한다. 나의 이런저런 모습 가운데 많은 끼니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고 상처받고 상처 주고 기쁨을 누렸으나 그저 이젠 '오늘도 뭐 먹지, 뭐 먹을래, 아무거나 먹지' 하며 나의 오늘에게 주어진 '사회적 영역'을 살아간다. 그런 의미로 내일은 마갈 가서 고기 먹을 거다. 고기를 구워주고, 먹고, 먹여주며 내일 또한 내일의 사회적 영역을 받아들이겠다,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