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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Aug 14. 2017

시간이 만든 그리움..

 커피를 입 안 가득 머금었다다가 몇 번에 나누어 천천히 삼켰다. 쓰디쓴 숨을 내쉬자 코 끝에 향이 돌았다. 숨이 다 뱉어진 코 끝에 숨을 쉬어 찬 바람이 들어 차자 묘한 긴장감이 돌아 양 볼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냥 작년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지긋지긋했었던 그 시간은 사실 다시 생각해내기까지 1년 만인,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는 것에 나에게 내심 서운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어깨가 뻐근해졌다.

 항상 살아가는 지금은, 사실 모든 지난 것들의 결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특별한 사건이 있거나 경험이 필요한 것도 아닌. 그냥 지금의 것들도 후에 다시 불현듯 찾아와 아쉬움을 남기겠지.


 그 땐 겨울이었고,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계처럼 일단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을 길엔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냥 아침마다 그곳에 들렀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카페는 일찍부터 커피를 팔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이 말은 마치 나의 하루에 있어서 '5분만 더 잘게요'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이크아웃을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잠시의 기다림 끝에 양 손에 방금 내려진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면 긴장했던 몸은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돌돌 말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고 잠에서 깨어 자리를 일어나듯 뭉롱하면서도 아찔한 순간이 된다. 그런데 가끔 그 카페의 주인은 잠이 덜 깼던지 컵 뚜껑을 꽈악 닫아주지 않았다. 그것도 모른 채 걷는 와중에 온 손과 가방에 커피가 튀어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냥 그것도 그것 나름 화가 나진 않았다. 좀 얼룩이 질지는 몰라도 끈적해지는 음료가 아니어서였을까. 그냥 기운이 없이 터벅터벅 그 겨울 길을 걷는 내 손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주어졌던 것이 그냥 위로가 되었다. 아직 퉁퉁 부은 무거운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마셨던 그 아메리카노가 좋았다.


 이젠 그곳을 갈 일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한 순간도 그곳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매달리느라 그랬겠지만. 지금 다시 떠오른 지금, 왠지 지긋지긋했던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아무래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 걸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인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겨울을 생각하면서도 왠지 포근했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으니까. 찬 바람에 몸서리치던 그 계절, 양 손에 쥔 따스한 온기와 함께 그땐 몰랐던 따스한 아침해가 포근히 비추고 었었단 걸 이제야 돌아보게 되는 건 시간이 그 만큼 그리움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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