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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Aug 30. 2017

시간이 만든 그리움.. 두 번째

사람이라는 게 참 변하지 않는다.

 열심히 작업하다가 하필 말도 안 되게 모든 파일을 날려버렸다. 하필 그때 shift를 누른 채 파일을 삭제하고 있었다니.. 잠시 나의 방의 모든 공기가 정체되어버렸다. '.. 나를 때릴까..?' 잠깐의 멍때림 후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이미 온몸은 긴장하고 열이 올라 땀이 흥건했다. 급히 인터넷의 창을 켜 '윈도우 10 파일 복구하기'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다 보니 결국 무언가 방법이 있긴 있는 듯했다. 


 '복구까지 남은 시간 세 시간..' 이 김에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누웠다. 새벽은 깊었고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될 리 없었다. 복구 중이라는 컴퓨터가 쌩쌩 돌아가는 소음을 내니 온 마음이 시끄러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말이다. 무언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드는 이상한 느낌에 울적해졌다. 왜 이리 나라는 사람은 가벼울까. 단지 별 일이 아닌 하나의 실수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나는 왜 이리 마땅치 않을까. 지금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된 김에 음원 스트리밍 앱에서 플레이리스트나 뒤집어보자 싶어 앱을 실행시켰다. 나의 취향을 진단하고, 나의 마음에 들만한 적절한 음악을 선별하여 추천까지 해주는 똑똑한 이 녀석이 솔직히 마냥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나도 모르는 나의 어떠한 상태를 과연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꽤 전에 했던 업데이트 이후 많이 바뀐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언제라도 때가 되면 바꾸리라 생각했는데 여태껏 게으름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게으름이자 또 다르게 말하자면 나의 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많이 들었던 윤상님의 곡을 실행시켰다. 이 아티스트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배반'이다. 특별히 노영심 님이 피아노로 연주로 리메이크한 버전을 말한다. 보통은 사람들이 원곡을 더 좋아하지 않나 싶지만 이 노래만큼은 양보를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작년에 이 노래를 가지고 글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 

 재생 버튼을 누르고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 노래는 나에게 있어서 마치 엄마에게 안긴듯한 그런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또한 내가 꼭 찾아 듣지 않아도 적절한 때에 위의 음원 스트리밍 앱이 추천을 해주는 묘한 인연도 있다. 그리고 늘 나의 그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겨울에는 늘 배가 아프다. 조금이라도 찬 바람이 들어가면 곧바로 배꼽을 주변으로 아려오는 복통은 온몸을 지치게 한다. 그런 겨울에 새벽이면 더욱 그러했다. 겨울에 더하여 새벽이라니, 정말 끔찍하게 춥고 외로울 뿐인 단어들이다. 옷은 무겁고, 길은 얼어붙어 미끄러워 한 걸음, 걸음을 떼고 움직이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빨간 버스를 타고 그렇게 배를 부여잡고 애써 진정시키며 가야 할 곳으로 가야만 했다. 비몽사몽 어지러운 정신과 어지러운 버스 소음에 지쳐 그렇게 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 와중에 이 노래를 듣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버스 소음이 진절머리가 나서 음악을 재생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이 노래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저절로 눈을 감고는 그냥 소리를 따라 느낌을 그려낼 뿐. 그런데 희한하게 이 노랜 춥고, 파랗고, 시리다. 그래서 더욱 아득하고 계속 사라진다. 마냥 편하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슬프거나 괴로운 느낌은 아니지만 그냥 흐느끼는 기분이다. 소리 낼 수 없이 그냥 어깨만 들썩거리며 홀로 흐느끼는 그런 것 말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오히려 자꾸만 지난 일들을 생각하고, 지난 것들을 찾으며 자꾸만 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늘 내게 있어서는 지난 일들이 아쉽기만 한 그런 것일까. 떠올리고 계속 붙잡아 그리며 그것으로 인해 또한 살아가는 걸까.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가끔 뜬금없이 어두운 밤에 달빛 또는 가로등 빛이 조용히 들어오는 창에 기대어 앉은 엄마의 품에 안긴 느낌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지난 일들을 그리다 보면 그냥 그것으로 한 번 어깨를 들썩이며 홀로 흐느끼는 그런 것 때문인 것 일까. 그 자체의 나를 홀로 그리는 나를 보며 또한 아득하게 먼 사람이기 때문에 그 조차 그리워하는 말도 안 되는 그 거리감이 때로는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그냥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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